상절지백

<상절지백 마흔세에엣>

글쓰는하얀개미 2012. 5. 21. 19:13

<광기>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미쳐가고 있다. 무엇에 미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
다. 우리가 서로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 자신
도 편집증과 정신 분열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나는 너무
나 민감해서 현실을 잘못 이해할 때가 많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기에 그
광기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동력으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미치면 미
칠수록 내가 설정한 목표를 더 잘 달성하게 된다. 광기는 각자의 머리 속에
숨어 있는 사나운 사자이다. 그 사자를 죽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의 정
체를 알고 그것을 길들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순치된 당신의 사자는 어
떤 선생, 어떤 학교, 어떤 마약, 어떤 종교보다도 당신의 삶을 훨씬 더 높
이 끌어올릴 것이다. 그러나 광기가 힘의 원천이 된다고 해서 그것을 과도
하게 사용하면 위험하다. 때때로 사자는 극도로 흥분하여 자기를 길들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덤벼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에드몽 웰즈.

<세번째 탈출을 무사히 마치고...>

-- 2월 14일 22:55
"아드레날린"이라... 재미있는 내용일까? 처음 부분은 좀 으시으시하다. 방
사능에 오염된 미치광이에게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여긴 비디오방이다. 기차시간은 23:55분. 부산행 무궁
화호다. 결국은 목적지가 부산이 되어버렸다. 어째선지는 모르지만 기차표
자동판매기에 버튼이 부산이 눌러지고 말았다. 또는 제일 늦게 출발하는 것
을 고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도착시간은 05:00분 쯤이다. 요즘은 기차가
너무 빨라진거 같다. 전에는 밤새 간것 같은데. 부산에 도착하면 어디로 갈
까? 가장 많이 가본곳이 부산이지만 아직 바다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바
다보다는 산을 좋아하지만 추운날씨 관계로 이번 발길에선 바다를 보고싶다
. 넓은 바다를... 그저 아무 생각없이 그 바다를 응시하고 싶다. 지금은 무
척 피곤하다. 잠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이러다 잠들면 안되는데. 참아보리
라. 나의 세번째 탈출을 위하여...

-- 2월 15일 00:00
기차가 출발을 했다. 다섯시간의 기차여행을 어떻게 보낼것인다. 잠을 자면
서 그냥 보낼것인가. 모르겠다. 몸은 무척 피곤하다. 어제까지 막차를 타고
퇴근을 하며 일을 한 탓일까? 그래도 이번주는 눈에 보이게 한일이 있었다.
뭔가 약간은 뿌듯. 그런데 오늘 이렇게 기차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
말부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나를 모르는 낮선곳으로. 잠시나마 나란
존재를 잊고 싶었다. 하지만 일상은 날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결국 시간은
흘러 오늘에 온 것이다. 처음 계획은 다음주로 잡았었다. 그래 21일 월차
계획도 잡았었다. 하지만 22일이 할머니 제사라. 이제 엄니 외엔 남자밖에
없는 집에 나마저 집을 비울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난 삼일 연휴를 포기해
야했다. 그래 차선책으로 놀토인 오늘을 잡은 것이다. 이렇게 무작정 떠나
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익숙해 진듯하다.(세번밖에는 안돼지만...) 그것도
언제부터인가 내곁에는 같이 있어줄 이가 없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
를 생각해주고 나를 이해해 주는 이가. 이제는 이렇게 혼자인 것을 즐기는
가 보다. 눈이 자꾸 감겨온다. 무리한 출발이라선지 체력이 견디어줄지 모
르겠다. 추위도 두렵다. 이런 추위에 떠난적은 없었다. 자리는 다행히 창쪽
이다. 밖에는 그만그만한 불빛들이 조용히 뒤로 지나간다. 무심히 지나가는
불빛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본다. 결국 그이에게는 아무런 연락
도 없었다. 삐는 조용히 잠만잤다. 아마 이번 탈출에서 그이를 많이 생각하
게 될것도 같다. 아직까지 별로라는 아니 처참이란 말이 더 어울리겠지. 이
렇게 끝나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때일은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미리
생각해봐야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나의 마음은 분명하
다. 그이를 좋아한다. 이 나이에 사랑한다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난 아
직 이것이 사랑인지는 모르겠다. 언젠간 이것이 사랑이다라고 결론을 내릴
날이 오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이다. 그이의 마음을 모르겠다. 그이는 아직
까지 그럴만한 여유를 주지않는다. 이전 이별의 후유증인가? 그이의 마음을
알수 있다면 좀더 마음을 편하게 할수 있을텐데. 앞으로는 알수 있을지도.
희망을 가져본다. 출발한지 삼십분이 지나간다. 차에 탓을때 옆자리에 아가
씨가 앉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행운이???!!! 내가 뭔소리를 한다냐.
뭐 어쨌든 기분은 약간 별로가 아니라 괜찮은편. 자 이제 잠을 청해야겠다.
잠이 올지 모르겠다. 눈은 감겨오지만 주위는 좀 시끄러운 편이다. 그래도
이따를 위해 조금은 잠을 청해봐야지. 천안역이란다.

-- 02:19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다. 왜냐? 겨울에는 물론 춥겠지. 그래 객차안에는
히터가 들어온다. 그 히터가 바로 창가 밑. 으~~~. 너무나 뜨겁다. 그 위에
올려놓은 왼발바닥은 철판위에 올려 놓은 곰발바닥꼴. 결심했다. 앞으로 다
시는 겨울에 밤열차를 타지 않으리라고. 난 원래 기차보다는 버스를 좋아한
다. 단순한 선로 위만을 달리는 기차보다는 그래도 조금 복잡하고 변화가
있는 버스가 좋다. 또한 창밖의 풍경 또한 더 변화무쌍하다. 뭐 밤에야 거
의 안보이겠지만. 두시간반 남았다. 조금이라도 수면을 취해야 활동에 지장
이 없을텐데. 지금 시간 백수동 방은 열려있겠지. 요성, 상규, 성도님, 선
영인 자겠고, 상형도 근무일테고, 경환, 대모가 들어와 있으려나? 나에게는
이제 뗄수 없는 백수동! 백수동에서 난 무엇을 찾는가. 그 답은 아직 모른
다. 그 해답을 찾기위해 이렇게 눈탱이 시뻘게 가지고 밤을 지세우는지도
모르겠다. 창밖을 보니 기차가 한 도시를 지나나보다. 방송에서는 김천이란
다. 누런 가로등 불빛들이 계속 이어진다. 밤의 주인공 가로등. 또다시 왼
발바닥이 곰발바닥이 되어가고 있다. 가관이군. 이건 글씨가 글씨가 아니다
. 아마 국민학교 삼학년 정도의 글씨체다. 다시 잠을 청해봐야겠다.

-- 06:13
태종대 전망대란다. 기차는 정시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결국 오는 동안 잠
이들고 말았다. 피곤함이 왼발의 곰발바닥의 고통도 이겨버린것이다. 그 곰
발바닥의 고통스러운 고통을... 기차에서 내려 덜깬잠의 몽롱한 상태에서
역광장으로 나섰다. 잠시 커피 한잔과 함께 앞으로의 일정을 잡으려 했다.
그때 들리는 소리. "태종대 일출보러 안가요?" 택시기사의 소리다. 잠시 생
각을 했다. 앞에 보이는 비디오방으로 갈것인가 아니면 일출을 선택할 것인
가. 결국 거금 만원을 주고 일출을 선택했다. 지난 여름 지리산 천왕봉에서
놓친 일출에 대한 미련이리라. 이곳엔 지금 타지에서 온 뭍사람들(연인들)
과 아침운동을 하러온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아직 해가 뜨려면 삼십분은 더
있어야 할것 같다. 여기는 전망대란다. 생각해왔던 태종대는 안보이고 자살
바위도 안보이고 콘크리트로 된 전망대만이 존재한다. 참 두 아가를 안고있
는 모자상이 있다. 밑은 돌벤취로 되어있는 둥그런 석상. 연인들의 모습이
다정스럽게 보인다. 나도 그이와 함께였다면 더더욱 좋았겠지. 바람이 분다
. 생각보다는 차가운 바람이다. 바다 바람이라서 그런것인가. 난 오늘 이
이른 새벽 바람 맞았다.

-- 09:47
해운대 앞바다다. 겨울 바다는 짙은 색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여린색
이다. 아주 연초록색깔이다. 깊이가 낮아서 그런것일까. 태종대에서의 일출
은 장관(?)일줄 기대했건만 또다시 날 배신하고 말았다. 한시간 동안의 추
위에서의 고통도 불구하고 그곳까지 찾아온 연인들의 마음도 모르는체 태양
은 얼굴도 내밀지를 않았다. 희뿌연 구름더미 너머로 숨어 좀체로 자기모습
을 들어내지 않았다. 결국 추위에 못이겨 자리를 떠야만했다. 그렇지 않았
다면 아마 그곳에서 망부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두번 타는 수고
를 하고 이곳 해운대에 도착을 했다. 바다와의 즐거운 만남은 잠깐 뒤로한
채 해장국으로 우선 아침을 떼웠다. 이제 해운대 모래밭에 앉아 바다를 응
시해본다. 주위에 갈매기들이 수없이 날고있다. 자신의 의지대로 하늘을 마
음껏 날고 있는 저 갈매기들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갈매기 우는 소리는 거
의 안들린다. 날씨가 추워 부리가 안떨어지나보다. 한때 아니 아직도 난 저
갈매기들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군대 가기전만해도 나의
모든 인생을 그곳에 걸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과는 거리가 먼 전혀 엉뚱한 일에 나의 인생을 소비하고 있지 않
는가. 그에 대한 댓가는 물론 충분히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작년말 이 문제로 한참 고민하고 있을때 바부팅이는 넌 무엇인
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난 아직 그대로이고 지금 현 상황
에서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핑계를 대고있다. 정말 다른 방도는 없는것일까
? 어린시절 나의 눈앞에서 사라져간 친구의 눈빛을 본이후 난 물을 무서워
한다. 이젠 희미해진 눈빛이지만 지금 바다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넓은
바다를 보고싶었다. 답답한 것이 없는 탁트인 곳을. 조잘조잘대는 인간들의
목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를. 파도소리, 바람소리, 갈매기의 울음소리....
너무 춥다. 부산이 남쪽나라라 따뜻하단 소린 취소다. 우리집 방바닥이 더
따뜻하다. 여긴 너무 춥다. 바다 바람이 분다. 난 오늘 또 바람 맞았다.

-- 12:14
고속버스 터미날이다. 버스가 출발을 한다. 서울행이다. 편한 여행을 위해
거금을 투자해 우등으로 선택했다. 날씨라도 따뜻했다면 심야버스를 이용했
을텐데 너무 춥다. 그래 생각보다는 이른 귀향을 하게 되었다. 이곳 부산에
도 이렇게 까지 만득이 시리즈가 유행할 줄이야. 만득이 동생 만덕이를 길
이기위한 만덕터널이 두개씩이나 있다. 역시 난 버스 타입인가보다. 마음이
편하다.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수많은 광경이 날 편하게 한다. 신나게 달린
다. 이 차를 제치고 저 차를 제치고 기분좋게 달린다.

-- 18:29
강남역 수원 직행버스 안이다. 이렇게 나의 세번째 탈출기는 끝이 나고있다
. 서울행 버스안에서 불편한 것에도 불구하고 잠이들어 버렸다. 천안휴게소
에 올라와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다. 추위에 너무
떨었던 탓도 있으리라. 이제 과연 이번 발길에서 얻은것이 무엇일까? 그것
을 알아버린다면 재미가 없을것 같다. 그리고 다시 떠날 생각도 안들것 같
다. 그래 그것은 미스테리로 남겨두기로 했다. 다음번 기회를 기약하면서.
버스가 출발을 했다. 마지막 종착지인 수원을 향하여. 집을 나선지 스물두
시간만이다. 집에 도착하면 스물네시간이 되겠지. 그 스물네시간동안 해운
대에서의 식사시간과 모래밭에서의 잠깐 동안을 빼고는 기차와 차속에서 기
간을 다 보냈다. 기차에선 뜨거운 히터에 잠을 못이루었고 버스에서는 쌓인
피로에 처참히 잠에 취해 지나버렸다. 하지만 마음속엔 뿌듯함과 행복감과
처참함이 생긴다. 우선 또한번 나 자신을 이기고 탈출을 성공시켰다는 뿌듯
함과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넓은 바다를 가슴속에 담고 끼룩끼룩 갈매기 울
음소리를 귀에 담고 저 드넓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왔다는 행복
함과 처참함 음...이것은 무엇에 대한 처참함일까. 이 처참함 또한 미스테
리로 남기리라. 다음번엔 소멸되어 없어지길 기대해보며. 이제 이곳 하늘도
다시 어두워졌다. 내일이 지나면 또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겠지. 컴치는
다람쥐의 생활로. 하지만 나의 네번째 탈출은 또다시 있으리라. 그때를 기
약하며 나의 세번째 탈출기를 마감한다.

---- 바람맞고 온 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