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절지백

<상절지백 백서어른>

글쓰는하얀개미 2012. 5. 22. 09:48

<라블레의 유토피아>
1534년 프랑수아 라블레는 '가르강튀아'에 묘사한 텔렘 수도원을 통해
자기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거기에는 통치 기구가 없다. <자기 자신도 다스릴 줄 모르거늘, 어찌 남을
다스릴 수 있으리오> 하는 것이 라블레의 생각이다. 통치하는 자가
없으므로 수도원의 공동 생활자들은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행동한다.
텔렘 수도원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까닭은 거주자들을 선별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혈통 좋고 정신이 자유롭고 교양 있고 고결하고
아름다운 선남선녀들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여자들은 열 살,
남자들은 열두 살 때 들어간다.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일할 마음이 나면 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쉬고, 마시고, 놀고, 사랑을 나눈다. 시계가 없으므로
시간의 흐름은 잊고 산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다만 소요, 폭력, 분쟁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힘겨운 일은 수도원 밖에
사는 종복들과 장인들이 맡는다.
수도원은 루아르 강 근처의 포르위오 숲에 있다. 방은 9천 3백 32개이며
성벽은 없다. <성벽은 음모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수도원의 전체적인
모습은 하나의 성과 같다. 지름이 60보쯤 되는 둥근 망루도 여섯 채가
있다. 각 망루의 높이는 6층 건물에 해당한다. 하수도는 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서관이 여러 곳에 있고, 중앙에는 연못이 있으며, 미로 모양의
포도(鋪道)를 갖춘 공원도 있다.
그러나 라블레는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이상향이 언젠가는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한 터무니없는 주장과 선동과 불화 때문에 붕괴되고 말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다.

---- 에드몽 웰즈

라블레 : 프랑스의 작가(1494∼1553). 소년기와 청소년기를 수도원에서
보내며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한편, 당시에 이단으로 취급되던 그리스
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를 독습하였다. 수도원을 나온 뒤, 고대 문화를
전범으로 삼는 인본주의자로서 의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을 연구하였다.
의사와 해부학 교수로서 명성을 떨쳤으며 므동의 주임 신부를 역임하기도
했다. <전무후무한 프랑스 산문의 마술사>라는 칭호를 안겨 준
'팡카그뤼엘'(1532)과 '가르강튀아'(1532)등의 장엄하면서도 익살스러운
5부작 소설을 통해,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본주의자들의 학문과 도덕에
관한 열렬한 애정과 정치와 교육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육체와 정신의 균형 속에서 사는 행복을 찬미하였다. 온갖 수준의 프랑스
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풍자적인 사실주의와 상징주의, 가장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가장 방자한 해학을 하나로 융합하였다.

이틀간 다섯시간이라는 가공할 만한 기록을 세우며 맞은 오늘 아침.
밀어닥치는 졸음을 이기느라 허벅지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생겼다. 보고서를
작성해야하는데 표와 수치들은 어느정도의 본능으로 해결할수 있었지만
멍해진 머리로 보고서 글맥을 이어갈수가 없어 헤메였다. 커피를 타서
마시기도 하고 세수를 해보기두 하고 기지개를 켜보기도 하고 담배를
물어보기도 해보았지만 별반 소용이 없었다. 한장짜리 보고서를 만들며
오전내내 시간을 보내야만했다. 오후가 훨씬 넘어서야 과장님의 오케이
싸인이 났다. 그럭저럭 오늘하루를 마무했지만 지금도 정신은 멍한 상태.
어떻게 글들이 쓰여지는지도 모르고 그저 본능적으로 자판을 두두리고
있다. 간만에 상절지백을 읽어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풋이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처음 상절지백을 쓸당시엔 백수동이라는 모임에는 게시판만이
존재했었다. 작은모임 게시판. 대화방도 없었고 그 외 어떤것도 없었다.
주로 모이는 곳은 강신옥네 방을 전세내어 모였었다. 일반대화방은
방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였고 쓰러진 코끼리 일어세우기였다. 그런 와중
생긴 게시판에 백동민들은 작은모임회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
게시판 번호 따먹기 경쟁이 한참이던 때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백동
게시판에 글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대화방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었다. 그때까지 게시판에 나의 뛰어난 지필실력을 선보이지 않았다가
이 어려운 순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상절지백이라는 엉뚱한 소재를
떠올려 뭍사람들의 관심을 사려했고 말이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처다볼수 있는 그런것을 나타내기 위해 상절지백을 시작했다. 처음
상절지백의 내용들을 다시 읽어보니 나의 엄청난 지필실력을 발휘해
탄생시킨 엄청나게 유치 찬란한 글들로 가득차 있었다. 매일밤 조회수를
체크했었고 조회수와 회원수를 비교해가며 상절지백을 안읽은 이들을
잡아내 처벌하던 그런때였다. 그래도 유치하나마 이런 추억거리가
남아있다니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다. 아직도 마무리 지으려면 멀었지만
이 상저지백이 있었기에 내가 이곳 백동에서 물주(?)로서 자리매김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직도 내 자리가 남아있는것일까? 없다면
돗자리라도 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방석들고 자리를 떠야하는 것일까?
간만에 돈규씨디를 돌려본다. 먼지도 뽀얗게 앉았으리라. 담배라도 한대
물어야겟다. 푸~~~~~~~~~~휴~~~~~~~~~
나만의 슬픔은 무엇일까? 내가 슬퍼했던적이 있을까? 펑펑 울어본적은?
하품할때 나오는 눈물이 아닌 눈물을 흘린적이 있을까? 온몸이 축쳐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 인데 잠이 안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도 몰려오는
하품은? 아~~~~~~~~~~~~~~~~~~~함!

---- 하품을 하며 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