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절지백

<상절지백 백다서엇>

글쓰는하얀개미 2012. 5. 22. 09:27

<동화(同化)의 방법>
우리의 의식은 우리 마음의 표면에 떠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마
음은 표면에 떠오른 10%의 의식과 심층에 잠겨 있는 90%의 무의식으로 이루
어져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는, 그 10%의 의식이 상대의 마음을 차지하는
90%의 무의식에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장벽을 통
과해야 한다. 이쪽에서 보낸 메세지가 상대방의 무의식으로까지 내려가는
것을 방해하는 의심이라는 여과 장치가 바로 그 장벽이다.
상대방의 버릇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도 그 장벽을 통과하는 방법중의 하나
다. 식사 때에 특히 그런 버릇들이 잘 나타나므로 그 시간을 잘 이용할 필
요가 있다. 맞은편에 앉은 상대를 잘 살피고 있다가, 그 사람이 말을 하면
서 턱을 문지르면 당신도 턱을 문지르고, 그사람이 손가락으로 감자 튀김을
집어먹으면 당신도 그렇게 하고, 그가 냅킨으로 입을 자주 닦거든 당신이
똑같이 해보라. 또 상대가 말을 할 때 눈을 바라보는지, 음식을 먹으면서
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빵에 손을 대는지 안 대는지도 살펴보라. 밥을 먹
을 때와 같이 가장 허물없는 순간에 상대의 버릇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
은 다음과 같은 무의식적인 메시지를 자동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된다. <나
는 당신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버릇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 교육받은 것도 생각하는 것도 같을 것입니다.>

---- 에드몽 웰즈.


-기억을 더듬어
이년만에 찾아 가는 지리산. 설레이는 마음으로 무거운 베낭을 짊어지고 기
차에 올랐다. 대합실에선 오분후에 떠나는 기차를 타고올 회사동료들과 구
례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출발을 했다. 자다깨다 자다깨다 구례에서 내려
야 한다는 생각에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도착한 구례구
역.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의 역사였다. 베낭을 잠시 내려놓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피곤한 몸이엇지만 눈앞
에 기다리고 있을 지리산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였다. 십분정도 지났을까
회사동료들이 탄 기차가 도착했는지 출구로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는 적은 사람들이엇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이들을 보니 왠지 친
근감이 들었다. 동료둘이 베낭을 메고 나타났다. 부서는 틀리지만 같은 또
래였기에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서로의 당구로 연을 맺은 사이기도 하고.
내가 계획했던 종주코스와 그들의 코스가 일치했기에 우린 합류하기로 했었
다. 여전히 역앞에는 지리산 성삼재까지 거침없이 달리는 택시들이 즐비하
게 늘어서있었다. 어떤 팀은 이미 택시에 올라 출발을 했고 때마침 도착한
버스를 타는 팀들도 잇었다. 성삼재까지 택시는 이만원. 예전엔 두당 오천
원이엇는데. 이것저것 따져보니 그리 비싸지는 않은듯했다. 즉석해서 이만
원씩의 회비를 걷고 성삼재까지 택시로 오르기로 햇다. 계약을 끝내고 우린
아침을 해결했다. 콩나물 해장국. 사천원이엇던가 오천원이었던가. 새벽부
터 먹는 콩나물 해장국은 역시 맛잇었다. 아침을 해결하고 수퍼에서 준비물
을 조금 샀다. 우선 지리산 손수건 한장, 가스, 베낭커버, 우의, 담배, 물
등. 살걸 다사고 드디어 택시에 올랐다. 역시 거침없이 달리는 택시. 차창
밖은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주었고 추억에 잠기게 했다. 산을 오르기전 입장
료가 이천원이던가 삼천원이던가 계산하고 고부랑 고부랑 고갯길을 묘기를
하듯 택시는 오르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질때마다 찾아오는 고막의 압력.
침을 한번 꿀꺽 삼켜 해결하며 경치를 감상했다. 윗쪽으로 갈수록 산은 안
개에 덮여갔고 그것을 보며 운좋으면 노고운해를 볼수잇을지도 모른다는 생
각을 했다. 결국 도착한 성삼재는 차가운 안개로 몇미터 앞이 보이지 않는
실정이었다. 긴팔 자켓을 꺼내 입고 베낭을 다시 고쳐 메고 등산화 끈을 단
단히 메고 난후 이번 산행의 무사완주를 위해 자판기 커피로 축배를 들었
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산장까지 오르는 삼킬로의 오르만길. 이년전 아침도
못먹고 올랏던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침을 먹엇어도 힘든것은 마
찬가지 였다. 벌써 난 뒤처지기 시작했다. 짐이 무거운 탓인가? 초기 계획
에는 합류계획이 없었기에 우린 텐트도 두개였고 모든짐이 거의 이중으로
되어있었다. 나 혼자만이라도 산행및 야영이 가능한 상태였으니까. 거의 한
시간이 되어 노고단 산장에 도착할수 있었다. 다섯번째 찾은 노고단 산장.
역시 변한것은 별로 없었다. 단한가지 절경을 감상할수 있는 오백원짜리 동
전을 넣어야만 볼수 있는 쌍안경이 설치되었을뿐.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오늘
의 산행 계획을 잡았다. 점심은 뱀사골 산장이 있는 화개재. 야영은 연하천
산장으로 하였다. 다시 무거운 베낭을 어깨에 메고 노고단 정상을 향해 오
르기를 이십여분. 갑자기 눈앞이 탁트이며 바위들이 눈앞에 들어왔다. 노고
단 정상. 해발 1507미터. 엄밀히 말해 노고단 정상은 조금더 위에 위치하고
그곳엔 방송송신탑이 세워져 잇고 그보다 조금밑에 돌로 세워진 탑이 자리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운해. 지리산 절경중 하나인 바로 노고운해다. 불
어오는 바람에 의해 산 능선을 못넘고 계곡을 메우고 있는 구름의 바다. 처
음 노고단을 찾았을때 난 그 절경을 보았다. 이번 산행에서는 그리 좋아보
이지는 않았다. 동료가 가져온 카메라로 기념 촬영으로 독사진을 한장씩 박
는 순간 되감기 버튼을 잘못눌러 남은 필름은 모두 물거픔이 되어버렸다.
하는수 없이 우린 마음의 눈에 모든것을 남기기로 했다. 다시 우린 베낭을
메고 길을 재촉했다. 연하천 산장까지의 오늘 코스는 넉넉한 시간으로 여유
가 잇엇지만 산에서의 시간이란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니. 이곳부터는 능선
을 타고 가는 길이라고는 하지만 주위가 나무로 모두 가려진 밀림속을 가야
하는 지루한 산행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길은 확실한 곳이지만
땅만보고 가야하는 너무나 지루한 길이기에 쉽게 지칠수도 잇는길이다. 임
걸령, 노루목, 삼도봉을 하염없이 내려가다 보면 저 밑에 나무들 사이로 흙
만 잇는 야영장이 하나 나타난다. 화개재. 이곳에서 왼쪽으로 이백미터쯤
내려가면 뱀사골산장이 자리하고 있고 물을 구할수가 있다. 이곳에서 우린
여장을 풀고 점심을 라면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물은 제일 팔팔한 동료 하
나가 뜨러갔다. 이번 산행을 위해 준비했던 수낭이 제역할을 할 기회였다.
접어 주머니에 넣으면 김밥 한줄보다 작은 부피의 크기지만 물을 담으면 육
리터가 들어가는 괜찮은 물건이다. 산에서 끓여먹는 라면의 맛. 역시 안먹
어본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환상적인 맛이엇다. 디저트로 커피도 한
잔씩 끓여 마셨다. 폼나게 그 이천원짜리 컵에. 설것이는 휴지로 간단히 마
치고 다시 짐을 꾸렸다. 이제 남은 것은 마의 토끼봉을 지나 명선봉 넘어에
있는 연하천 산장. 넉넉한 시간이다. 하지만 눈앞에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마의 토끼봉을 바라보며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안개에 뒤덮여 있는 토끼
봉. 해발 1533.7미터의 토끼봉은 여기부터 계속 정상까지 올라야하는 주능
선 종주코스의 첫번째 맞닥들이는 힘든코스이다. 이미 두번을 올라본 경험
이 있는 나로서는 위를 보지 않고 그저 땅으로 떨어지는 땀방울만을 바라보
며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내가 제일 뒤로 쳐졌다. 종주를 위해 무리하지
않고 일부러 천천히 오른 것도 있었다. 그런탓인지 의식할 사이도 없이 이
미 난 토끼봉에 올라있었고 이것이 산행의 요령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되엇
다. 오르막에서는 보폭을 줄이고 뒤도록이면 갈지자로 천천히 오르며 위를
되도록이면 확인하지 않고 그냥 오르는것. 슆게 오른 토끼봉을 뒤로하고 명
선봉을 지나 우린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우리와 같은 코스로 온 한팀이
(눈에 띄이는) 있었다. 국민학생 중학생들로 보이는 삼사십명의 아이들과
인솔자 셋. 화랑단이라나? 극기훈련을 왔다한다. 아이들을 끌고 이곳에서
극기훈련이라니 힘들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훗날 아이들에겐 많은 추억거리
로 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산장 앞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칠려하니 여기선 못치게 한단다. 우쒸~~ 결국 예전에 쳤던 저기 좀더 내려
가 그 밑에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다른 팀들도 다 내려와 자리를 잡고 텐
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 작년에 구입한 일인용 원터치식 텐트로 텐트만
피는데는 오분이면 족하고 플라이 쒸우는데 한 십분이면 된다. 내부는 짐들
을 풀어놓고 침낭하나를 깔면 딱 맞을 그런 크기다. 텐트를 다치고 우린 밥
을 불에 앉혔다. 그런데 화랑단 인솔자가 오더니 산장에서 이곳에선 아니
지리산 전체다 지금은 야영을 할수 없다는 것이다. 산장에서만 잘수 있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이 많은 인원을 다 어떻게 수용하려고. 힘들게 산을 타
고 힘들게 텐트를 치고 이제 실만하니 텐트를 걷으라고? 다른 팀들은 주섬
주섬 텐트를 걷고 산장으로 올라갔다. 우린 사태추이를 살피기로했다. 밥을
올려놓은것도 있었고 이 많은 인원이 산장에서 지내긴 무리라 생각했기 때
문이다. 저녁은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쌓온것을 많이 많이 했다. 고추
장 참치 찌게에 김치도 꺼내놓고 런천미트에 멸치볶음 고추장엔 박은 고추.
간만에 차려진 진수성찬에 게는 감추듯 우린 저녁을 해치웠다. 위쪽 산장에
서는 산장에 자리가 모자라는지 그 앞에다 텐트를 치고 텐트 칠 자리도 모
잘라 물흐르는 곳에 치기도 했단다. 우린 그냥 여기서 버티기로 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이걸 걷어 가서 칠곳도 마땅치 않았다. 버티는 동안 그 쪽에
인원이 많아선지 아님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몰라선지 산장지기는 아침
까지 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산장비가 두당 오천원이란다. 산
장비를 받아먹을 속샘인지. 역시 휴지로 설것이를 간단히 끝내고 커피를 이
천원짜리 컵에 타 마시고 조금후 가져온 양주를 펼쳤다. 햄 남은 것을 안주
로 시작한 술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너무들 피곤해선지 체반도 비우지
않았다. 큰것도 아니고 손바닦만한 작은 크기였는데. 내일은 아침 일찍 출
발하여 아침은 벽소령에서 먹기로 하고 일찍들 잠자리에 들었다. 난 내 텐
트에서 처음으로 자보았다. 약간은 비탈진곳에 자리를 잡은 내 텐트에서 난
일부러 윗쪽에 다리를 두고 잤다. 다리로 몰렸던 피도 머리로 짜 내릴겸.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자다깨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다섯시에 눈을 떴다.
미적미적 대다가 어제 남은 밥에 물을 붇고 끓여 누른밥을 먹었다. 반찬도
없이. 텐트를 걷고 짐을 챙기다보니 벌써 출발하는 팀들이 있더군. 오늘의
산행을 점검했다. 벽소령에서 아침을 먹고 세석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촛대
봉을 올라 장터목산장까지 가는 코스다. 만만치 않은 코스다. 이 코스는 주
능선 코스중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코스이다. 장
터목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날 아침일찍 아니 새벽 짐을 둔체 빈몸으로 천왕
봉에 올라 일출을 감상하는 그런 코스이다. 우린 드디어 출발을 했다. 안개
구름은 어제보다 많이 줄어있었지만 나무와 수풀사이로 계속 산행을 해야했
기에 베낭에는 카바를 씌웠다. 우선 처음 목표인 벽소령은 1462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 하나만 넘는 한시간 이십분 남짓 코스의 그리 어렵지 않
은 코스이다. 그런데 이곳부터 나에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발을 내 디딜수록 오른쪽 무릅의 통증이 가중되기 시작한거다. 한달전 덕유
산에서 당했던 쥐들과 무릅통증이 일시적인것이 아니었는가 부다. 앞으로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통증은 심해졌고 급기야는 오르막에서는 오른발을 내
디딜수가 없었고 내리막에서는 왼발을 먼저 내디딜수가 없었다. 오른발을
구부리고는 무릅이 내 몸무게에 베낭의 무게까지를 감당해내지 못하게 된것
이다. 점점난 동료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벽소령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었
기에 동료들은 그곳에서 기다리리라. 나보다 나중에 출발한 팀들이 이미 나
를 따라잡아 앞으로 나아갔고 그 극기훈련팀인 화랑단도 날 앞질러 가고 있
었다. 지도상의 삼각고지인지는 모르지만 형제봉이라는 곳에 올라 휴식을
취했다. 구름에 가려 밑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햇볕은 나고있었다.
이거 하늘이 돕는가보구나. 잘하면 이번에 일출을 볼수 있겠다 생각은 했지
만 이런 다리로 과연 천왕봉까지 갈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화랑단 맨 마지막 인솔자가 지나며 건내준 맨솔래담을 오른쪽 무릅에 바르
며 좀더 휴식을 취했다. 다시 출발을 했다. 더이상은 지체할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종주를 못끝내고 도중하산을 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조
금가다보니 형제봉이란 푯말과 함께 이정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커
다란 바위(한 삼사층 높이의 바위) 두개가 서로 기대어 앉아있는듯한 모양
을 하고 서있었다. 그게 형제봉이었다. 두 바위가 서로 기대어 있는모습이
너무나 다정스럽게 보였다. 마치 연인인듯. 왜 연인봉이라 하지 않았을까?
걸음은 점점 더디어졌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쯤 갔을까 드디어 벽소
령의 이쁘장한 산장이 눈에 들어왔다. 제작년 이곳을 찾았을때는 산장 공사
중이엇따.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도 반가왔다. 동료들은 라면을 끓일준
비를 하고 있었고 난 이곳까지 무려 세시간을 걸려 도착을 했다. 동료들은
한시간 반을 기다렸다한다. 이럴수가. 우린 이곳에서 아침 아닌 점심도 아
닌 끼니를 라면으로 떼웠다. 이곳 역시 물은 산장좌측으로 200미터쯤 내려
가야만 있다. 우린 물도 보충을 하고 필름도 하나 사서 사진을 박았따. 이
곳 산장지기가 키우는 강아지 한마리가 있었다. 짧딱막한 다리에 털많은.
귀여웠다. 다음은 세석산장까지의 길이다. 봉우리를 세개 넘어가는 세시간
코스. 그럼 나에게는 여섯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길이었다. 동료들은 은근히
하산하라는 눈빛이었다. 난 무시했다. 난 절대 앞으론 도중하산을 안하리라
. 귀여운 강아지와 작별을 하고 출발을 했다. 몇걸음 가지 않아 이년전이나
지금이나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좌측으로는 커다란
기암괴석이 떡하니 버티고 있고 우측으로는 깍아지른 벼랑밑으로 이어지는
원시림의 계곡. 저 멀리 그 계곡에 담겨있는 안개구름들. 해가 나고 있었기
에 그 안개구름은 초록색 원시림에 대비되어 더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
고 놔주지를 않는다. 이미 한팀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고 무비카메라까지
동원하여 그 장관을 필름에 담고 있었다. 우리도 질소냐 자리가 나길 기다
려 기념촬영과 함께 그 장관을 마음속에 까지 담아 두었다. 동료 하나는 바
위틈을 힘겹게 뚫고 나와 피어있는 두송이 나팔꽃같은 원추리라는 꽃이던가
를 카메라에 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구벽소령까지는 평탄한길. 참 이곳에
선(산장) 초코파이가 한개에 천원. 구벽소령. 이곳에서는 저 산밑에 삼정리
에서 올라오는 비포장 도로가 있다. 예전에 군작전도로루 쓰였다는 말이 있
던데 이년전 이곳을 찾았을때는 이곳에서 미수가루를 팔았었다. 한 그릇에
천원이었던가? 지금은 장마철이어선지 없었다. 이제 길은 다시 원시림속의
돌투성이 오솔길로 접어들고 다시 나의 속도는 늦추어지기 시작했다. 하지
만 무슨일인지 맨솔래담 탓인가? 벽소령 도착할때까지 오른쪽 무릅의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이 어느정도는 참을수 있는 고통으로 약화되어있었다. 다행
이었다. 여전히 동료들보다 쳐지는것은 마찬가지 였지만 그리 많이 쳐지지
는 않았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한참을 가다보니 나무로 잘 짜여진
계단이 눈앞에 들어왔다. 무릅이 맛이간 나로서는 잘 짜여진 규칙적인 계단
보다는 울퉁불퉁한 돌오솔길이 더 걷기가 편했다. 한계단 한계단을 난간에
의지하여 내려가다보니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비샘이다.
샘이 나오기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이곳
을 지나면 세석산장까지는 물이 없다. 그러기에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겪을수도 있다. 동료들은 이미 와 있었다. 조금은 빨라진
나의 발걸음에 동료들은 중도하산의 마음을 버릴수가 있었고 주능선 종주
완주라는 부푼 마음을 가질수가 있었다. 샘은 누가 여기서 설것이를 했는지
음식냄새가 났고 보기에는 먹지못할 물같았지만 어쩌랴 맛을 보니 먹을 만
은 했다. 물통을 채우고 다시 출발을 했다. 앞으로 칠선봉 영신봉을 지나
있는 세석산장이 목표다. 지도상은 두시간코스. 출발했다. 동료들을 앞으로
먼저보내고 난 최대한 쳐지는 것을 줄이기위해 열심히 따라갔다. 어깨를 누
루는 묵직한 베낭과 천근같은 다리를 끌며. 능선을 넘나들며 원시림속의 오
솔길을 따라가는 지루한 산행. 뒤에 오던 사람들은 하나둘 나를 앞서가고.
그래도 포기할수는 없었다.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동료 한명이 쉬고
있었다. 벌써 왔겠냐는 그 놀라는 듯한 눈빛. 칠선봉. 해발 1576미터. 먼저
온 동료가 세석에서 만나기로 하고 먼저 출발을 했다. 조금후 나도 다시 출
발을 했다. 세석을 향하여. 세석에서 우린 점심을 먹기로 했었다. 이미 점
심때는 지나버렸지만. 때론 하염없이 내려가기도 하고 때론 위험한곳이라
만들어놓은 난간과 밧줄을 잡고 오르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가
다보니 섬뜻하게 겁이 날때도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저 위게 하늘이 바라
다 보이는 곳이 있었고 몇몇사람이 그곳에서 쉬고 있었다. 나도 베낭을 내
리고 물을 마시며 잠시 쉬고 있을때였다. 삼베 바지저고리에 샌달을 신은
아저씨 한분이 오며 혹시 다친사람 못봤냐는 거다. 산장에서 나오신 분같은
데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으러 나왔다는 거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삼일전에도 천왕봉쪽에서 사람이 실종되어 아직 못찾았다는 얘기도
하고 얼마전엔 이곳에서 조금 더간 영신봉 근처에서 여자한명이 십여미터
바위밑으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한다. 다행히 그 밑은 원시림이라 머리
가 조금 찢어지고 온몸에 타박상만을 입었다 한다. 의식을 잃지않고 소리를
질러 다행히 구조가 되었다 한다. 그곳을 출발하여 나도 그 사고가 났던 바
위에 올랐고 잠시 바위밑을 쳐다보았다. 영신봉을 지나 가다보니 눈에 익은
철조망 울타리가 보였고 세석산장 0.7키로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드디어 다
왔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을 쉴수 있었다. 울타리를 따라 내려가다보니 저 밑
에 산장이 보이고 넓디 넓은 세석평전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지리산 종주
를 친구들 셋이랑 할때 노고단에서 여덟시에 출발하여 이곳에 여덟시에 도
착했었다. 이곳에 텐트를 치고 그날을 마무리했었다. 이년전에는 산에서 만
난 솔로일행중 한명을 데리고 이곳까지 왔다가 결국 그 친구를 이곳에 두고
나 혼자 장터목으로 갔던 적도 있던 감회가 새로운 곳이다. 지금 이세석평
전에서는 산장에서만 잘수 있고 야영은 하지 못한다. 야영했던 자리는 풀과
나무를 심어 한참 복구작업 중이었다. 산장에 내려스니 물을 뜨러갔다 오던
동료들의 놀라워하는 눈빛. 한시간 정도 후에나 도착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왔다는 거다. 힘은 들었지만 그정도를 줄일수 있었다는것에 난 흐믓했
다. 누름밥과 라면으로 채웟던 허기진 배를 우린 네시가 다되어 밥으로 채
울수 있었다. 감자와 양파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 찌게. 일품이었다.
커피도 한잔 끓여 마셨다. 그런데 날씨가 맑을까 했더니 산밑에서 차가운
안개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우린 다시 짐을 꾸렸다. 그리고 장터목산장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띠었다. 목표는 장터목 산장. 지도상으로는 한시간
사십분의 거리다. 늦어도 두시간 안에는 닿을수 있을거 같았다. 그래야만
어둡기 전에 도착해 야영할 곳을 잡을수 있을거 같았다. 우선 처음 맞닥들
인 것은 해발 1703.7미터의 촛대봉. 세석에서 끝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정상
까지의 길이 밑에서도 다 보이는 봉우리다. 역시 맨 마지막으로 촛대봉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그저 땅만보구 끝을 생각하지 않고 오르다 오르다
보면 정상에 도착하겠지. 중간에 잠시 쉬며 세석을 내려다 보았다. 이미 세
석은 차가운 안개구름에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날씨도 어두워 지는
듯하고 점점 빗방울도 떨어지는 듯했다. 다시 얼마를 올랐을까. 난 촛대봉
이란 이정표가 붙어 잇는곳에 서 있었고 저 앞에는 촛대 모양의 바위가 있
다. 촛대봉에 얽힌 사연은 많다고 한다. 지금 기억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어
디나 다 사연은 있는듯. 앞으로 전진 할수록 빗줄기는 점점더 굵어졌다. 하
염없이 비를 맞으며 걸었다. 산행도중 비를 맞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것은 알고 있다. 우선 체온이 저하되고 길이 미끄러워진다는 것이다. 하
지만 나처럼 땀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는 또한 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때
론 그 비를 있는 그대로 내리는 그대로 맞는다는 것도 싫지는 않다. 그저
그렇게 비를 맞으며 걸었다. 바위를 잡고 기어오르기도 하며. 어느정도 갔
을까. 다와가는거 같기는 한데 낮익은 장터목 산장은 보이지가 안았다. 조
금 더 비를 맞으며 가다보니 동료한명이 맨몸으로 다가왔다. 장터목 산장에
있는데 도착하던 한 아저씨가 저기 뒤에 일행한명이 맛이 가 잇다고 해 혹
시 어디 다쳤나하고 찾아 왔단다. 허긴 그럴만도 하다. 온몸은 비에 맞아
생귀꼴이었고 걸음은 오른쪽 무릅으로 인해 제대로 걷고 있지를 못했으니.
베낭을 들어준다 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지고온 짐을 끝까지
메고 종주하고 싶었다. 얼마나 남았나 물었더니 내 걸음으로는 한 삼십분
정도 더 가야한다 했다. 동료에게는 먼저 가라하고 마지막 힘을 다해 발걸
음을 옮겼다. 오르막 내리막을 세네번했을까 저멀리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드디어 왔구나. 능선 꼭데기에 텐트들이 쳐지고 있었고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고 있었다. 동료들은 쉽게 찾을수 있었다. 야영은 왼쪽 밑으
로도 자리가 많았지만 산장에서는 비가 와서 위험하니 윗쪽에만 치라고 했
단다. 처음엔 그냥 밑에다 칠려 했는데 아무리봐도 위험할듯했다. 그래서
그냥 위쪽에 텐트를 한개만 치기로 했다. 텐트를 치고 나니 모두들 오늘 산
행이 힘들었는지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난후 누워버렸다. 그동안 무릅이 아프
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동료들이 거의 식사준비니 뭐니 다했는데 미안한 마
음에 이번엔 내가 물을 뜨러 갔다. 이곳에는 물이 중산리계곡으로 하산하는
쪽으로 한 오십여미터 내려가면 수도꼭지를 달아 잘 꾸며져있다. 이년전 이
곳에서 불을뜰때는 사람이 많아 두시간을 줄을서 기달려 물을 떴다. 그 만
큼 사람이 많은 이유는 이곳이 천왕봉을 정복하기 위한 마지막 전초기지인
샘이어서다. 이곳에서 한시간이면 천왕봉에 오를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야영을 하고 새벽에 일출을 보기위해 천왕봉에 오른다. 이번엔 장마
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 쉽게 물을 떴다. 사람들이 많으면 식수만
뜨는것도 감지덕지 한데 사람이 별로 없어 그동안 쌓인 소금덩어리를 씻어
내는 사람들도 있엇다. 텐트에 돌아와보니 여전히 누워있는 동료들. 우선
그 동안 미루어왔던 화장실을 다녀왔다. 퍼세식의 냄새 지독한 화장실이지
만 나름대로 참을 만한 곳이 이곳이다. 이곳에선 삼백원짜리 휴지가 천원.
볼일을 끝내고 와서 커피를 한잔 끓였다. 점심을 네시가 넘어 먹었으니 저
녁은 그냥 남은 양주와 반찬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양주를 마시며 내일의
마지막 산행을 점검했다. 우선 일출을 보겠다는 우리의 계획은 날씨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럼 다음은 하산코스인데 중산리냐 대원사냐 칠선계곡이냐 백
무동이냐 하는 문제다. 중산리코스도 천왕봉에서 바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
고 이곳 장터목에서 하산하는 코스가 있었다. 대원사 코스는 우리에겐 너무
힘든 코스였고 칠선계곡코스는 사람들 말로 비가와서 위험하다고 가지말라
는 코스였다. 백무동코스는 이년전 이미 한번 하산을 해보았기때문에 그리
로 하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중산리 코스로 결정을 하고 일출을 못볼
바에는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천왕봉에 올랐다가 바로 중산리로 하산하는
것이 낮다고 결정을 내렸다. 너무힘든 탓인지 술들도 많이 마시지 않았다.
서로들의 침낭속으로 들어가 우린 지리산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냈다. 시끌
시끌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밖을보니 다른팀들은 벌써 짐을 꾸
리고 떠날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우린 일어나 산에서의 마지막 밥을 지었
다. 남은 감자와 양파를 넣고 된장을 풀고 모양만 된장찌게를 끌였다. 아무
것도 들어간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맛은 끝내줘요 였다. 후식으로 역시
커피를 끓여 마시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베낭에 짐을 챙겨 넣고 텐트를
걷었다. 길을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이빨을 닦았다. 깨운하게. 베낭을 다시
메었다. 이제 짐이 줄기도 했을텐데 베낭의 무게는 여전히 묵직하기만 했
다. 이제 마지막 목표인 천왕봉을 향하여 출발했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
을 통과하여 천왕봉에 이르는 한시간 남짓한 코스이다. 동료들이 먼저 출발
을 하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계속 오르막을 올라야하는 해발 1806미터의
제석봉.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양 옆으로는 고사목이 눈에 들어왔
다. 이곳의 고사목은 여러가지 사연이 있다한다. 수풀속에 군대 군대 자리
잡은 고사목. 아마 직접 봐야 그 기분을 알수 있으리라. 제석봉을 지나 계
속 앞으로 전진햇다. 한 아주머니 아저씨 팀을 만났는데 나이드신 부부들이
오신것 같은데 자꾸 큰소리로 떠들고 노래를 해데는 바람에 기분이 썩 좋지
가 않았다. 그 소리가 듣기싫어 아픈 다리에도 불구하고 빨리 앞으로 나아
갔다. 어느새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통천문에 도착을 했고 그곳을 갈지자
로 올라섰다. 계속되는 바위길을 기어오르며 전진하다보니 저 앞에 드디어
천왕봉이 보인다. 이미 천왕봉의 거대한 바위 위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나도 그곳에 올라섰다. 생전 세번째 밟아보는 천왕봉 정상. 다른 어
느 무엇보다 높은곳에 내가 있다는것은 역시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그간
아파왔던 무릅의 고통도 잠시 잊는듯했다. 해발 1915.4미터의 천왕봉. 비록
주위는 안개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뻤다. 천왕봉이라 쓰
여있는 비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옆에 바위에 잠시 앉았다. 그 옆에 한
가족이 올라왔나부다. 아빠, 엄마, 두딸. 딸아이 엄마는 연신 핸드폰을 눌
러댔다. 그런데 아무도 안 받나보다. 딸이 그만하라는 성화에도 딸아이 엄
만 이 기쁨을 전해야한다며 계속 핸드폰을 눌러댄다. 동료도 피시에스를 가
지고 갔었으나 이지역은 016이 안터지는 곳이란다. 구름에 싸여있는 주위를
둘러보니 마치 구름에 떠잇는 아니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손오공이 된듯
한 기분이다. 비록 이번에도 일출은 놓치고 말았지만 후회는 없다. 난 이곳
에 다시 섰고 앞으로도 몇번 아니 몇십번 이곳에 다시 올테니까. 천왕봉 정
상 정복의 기쁨을 뒤로하고 이제 하산을 해야한다. 중산리코스. 지리산 천
왕봉에 오르는 최단거리 코스. 그만큼 급경사의 길이다. 무릅이 맛이간 나
로서는 걱정이었다. 지도상으로는 두시간 코스였지만 이런 무릅으로는 두배
이상이 걸릴듯했다. 마지막 남은 아트라스를 셋이서 한입씩 나누어 먹고 출
발을 했다. 천왕봉의 거대한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 급경사에 접어들었다.
동료들은 앞다투어 출발을 했고 난 몸의 균형을 맞추며 천천히 내려갔다.
얼마를 내려갓을까 샘이 하나나왔다. 천왕샘. 거대한 바위틈에서 졸졸졸 흘
러나오는 샘물. 샘이 솓아난다기보다는 빗물이 바위틈에 스며들어 그것이
스며나오는 것이라 한다. 그래 장마철이 지나고 나면 대부분 말라 버리기가
일쑤란다. 지금은 물이 풍부했다. 잠시 베낭을 내리고 물통도 채우고 얼굴
도 한번 닦았다. 너무도 시원한 샘물. 다시 내리막을 향해 내려간다. 오르
막이 전혀없는 내리막길. 사람들이 힘들여 올라오는 것을 보니 앞으로 올라
갈 길이 측은해보이기 까지 한다. 시간 반은 내려갓을까 저 밑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법계사. 로타리산장. 이렇게 높은 곳에 누가 절을 지어놓았을까?
동료들이 이쯤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을 했는데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
다. 이미 내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출발전 한번엔 내려간다는 동료들
의 말이 떠올라 난 바로 출발을 했다. 베낭은 비 보다는 땀에 더 젖어있었
다. 이곳부터의 하산길은 초행이다. 처음 지리산을 종주할때 이 중산리코스
로 내려오긴 했지만 지금 이 법계사부터의 하산코스는 당시 패쇄되어 있었
고 우린 왼쪽으로 돌아 청소년수련장이라는 곳을 지나 내려가는 우회코스로
내려갔었다. 모르는 길을 가자니 겁이 조금 났다. 그것도 혼자이니 만큼.
올라오는 사람들마다 중산리 코스가 맞는지 확인을 했다. 이코스는 하늘도
보이지 않는 그저 내려가기만하는 지겹게도 계단이 많은 그런 코스다. 이런
곳을 어떻게 참고 올라와 천왕봉까지 갈까 의문이었다. 길은 내려가도 내려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물흐르는 계곡과 함께 동료
한명을 만났고 그 동료는 베낭끈이 끊어져 늦어졌다 했다. 동료는 다시 앞
으로 나아갔고 또다시 난 뒤로 쳐졌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어느곳이 끝인
지 모르니 점점더 두려움은 커졌다. 계곡을 옆에 끼고 내려가던중 계곡의
바위위에 낮익은 베낭이 하나 보였다. 자세히 보니 동료의 베낭이었다. 동
료들은 잠시 쉬려 그곳에 멈추어섰던 것이다. 내가 못보고 지나쳤다면 아마
난 끝까지 그냥 내려갔을것이다. 베낭을 벗어놓고 등산화를 풀렀다. 양말을
벗으니 발이 간질간질했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너무 차가와 오
초이상을 담고 잇을수 없었다. 발가락을 보니 양쪽 새끼 발가락에 물집이
잡혀있다. 등산화가 아직 길이 안들었나보다. 우린 다시 베낭을 메고 내려
가기 시작했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드디어 사람들이 보이는 야영장이 나왔
고 차가 다니는 길이 나왔다.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었다. 버스가 있는곳
은 여기서 한 삼십분은 더 내려가야한다. 그동안 다떨어져 못피웠던 담배를
사서 피우며 아스팔트길을 따라내려갔다. 결국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도
착을 했고 우린 주린배를 돌솥비빔밥으로 채웠다. 시계는 세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아침만 먹고 쉬지 않고 내려온 우리의 허기진 배는 돌솥까지 먹어
버릴양 밥을 먹었다. 드디어 이렇게 마침내 우유곡절 끝에 우린 지리산 종
주를 끝을냈고 이렇게 어려운 산행을 한것에 그간 나의 마음이 많이 더러워
짐을 느꼈다. 산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어낸다는 얘기
를 들어본적이 있는거 같다. 아니 내가 생각한건가? 마음의 수양을 새로 시
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우린 다음 행로를 의논했다. 우선은 버스를 타
고 어디든 나가야 했지만 동료중 하나는 바다를 보러가자 했다. 다른 하나
는 다음 스케즐이 이미 잡혀 있어 집으로 가야한다 했다. 처음을 같이 시작
했으니 마지막까지 같이 있고 싶어 꼬시고 얼르고 협박하곤 했지만 끝네 동
료는 집으로 간다 했다. 버스를 타러 갔더니 진주로 나가는 버스가 있고 그
버스가 부산까지 간다했다. 이곳에서는 그 버스밖에 없단다. 험. 여기서 부
산가는 버스가 있을줄이야. 차는 시골 마을 버스 갔았다. 진주로 나가면 부
산이든 설이든 버스가 많을것 같아 우선 진주로 나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
고 나가며 지리산을 돌아보았다. 정상은 다음에 다시 오라는듯 안개구름에
아직도 덮여있었고 이 밑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 다음 다시
오르리라. 한시간을 좀더 갔을까 나와는 인연이 깊은 진주 시내에 접어들어
터미널에 다았다. 역시 지방인가부다 생각하게하는 버스터미널. 기사아저씨
는 마이크로 부산까지 가는 사람은 그냥 앉아서 기다리라 한다. 머리 위로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삼천포. 울 조카가 있는곳. 조카도 진주나오면 여기
서 이 버스를 탈텐데. 하지만 연락처가 없다. 버스는 십분마다 있다한다.
부산행이. 설행은 늦게나 있어 집에 간다는 동료도 부산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차표를 끊고 차에 오르려니 낮익은 기사아저씨의 얼굴. 헉. 우리가
중산리에서 타고 나온차가 아니던가. 흠. 기사아저씨의 이상야릇한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차에 올랐다. 출발한다. 삼천포행 버스를 뒤로하고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저 앞의 낮익은 길. 공군교육사령부.
감회가 새롭다. 벌써 팔년전의 일이군. 나이가 조금 든 버스였지만 예상외
로 힘차게 달려나간다. 느낌으론 백사십 백오십정도는 달리는듯. 옆에 동료
가 슬그머니 안전벨트를 맨다. 난 버티었다. 오른쪽 옆에서 합쳐지는 길로
엘란트라 한대가 들어서더니 이내 우리가 달리는 일차선까지 그냥 밀고 들
어온다. 그 서슬에 놀라 브레이크를 밟는 기사아저씨. 열이 받으셨는지 그
엘란트라 꽁무니에 차를 바짝 갔다 부친다. 몇초간 버티던 엘란트라. 결국
은 옆차선으로 비껴난다. 다시 버스는 앞으로 쭈욱 내달린다. 나도 슬기머
니 안전벨트를 찾아 메었다. 남해고속도로. 처음 친구들과 지리산을 종주하
고 중산리로 하산하여 그곳에 기다리고 있던 친구의 차를 타고 울산으로 가
기위해 이 남해고속도로를 달렸었다. 그땐 억수로 차가 밀렸었는데. 두시간
남짓 달렸을까 김해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여객기가 한대 이륙을 위해 활주
로를 달린다. 강을 하나 건너고 또다시 강을 건넌다. 하나는 낙동강이고 하
나는 뭐지? 오리알은 어디 있을까? 터미날에 도착했다. 그래도 광역시니 터
미날도 틀리더군. 서부터미날이던가? 부산 이곳도 나에겐 감회가 새로운 곳
이다. 사상공단.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던가? 구포에 후배네 집이 있
었지. 바다를 보기로한 동료와는 처음 해운대로 가려했으나 내일의 귀향길
을 생각해서 광안리로 가기로 했다. 그 김에 집으로 간다는 동료도 같이 우
선 부산역으로 가기로 했다. 구포에서 기차를 탈수도 있지만 수원에서 내린
다는 동료의 도착시간을 고려해 막차를 타려면 시간을 같이 메꾸어주기 위
해서였다. 물어물어 부산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광역시는 광역시군.
한참을 간다. 부산역까지는 이십정거장이 넘는듯하다. 버스정류장 안내방송
에 가야동 어쩌구한다. 가야동? 갑자기 푸딩이 생각이 났다. 한참을 달려
이제는 익숙한 부산역에 도착했다. 막차는 열한시반이다. 두시간 남짓남았
다. 표를 끊고 우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난 얼큰한 육계장을 먹었다. 그리
고 동료의 손전화기를 빌려 삐삐를 쳤다. 동료가 가기전에. 전화가 안온다.
요것이? 다시 한번 쳤다. 전화가 온다. 나 부산. 출발전에 삐칠께. 바다 보
자던 동료도 이후 익산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스케즐을 잡고있었기에 나
도 이렇게 시계줄을 잡았다. 시간이 아직 남았다. 우린 마무리 당구한게임
을 했다. 땀에 쩔었던 속옷에 내 말랑한 히프가 쓸려 아파 결국 내가 물렸
다. 시간이 되어 집으로 가는 동료를 배웅하고 우린 광안리로 가기위해 길
을 물었다. 저기 앉아있는 연인한쌍. 남자에게 물으니 저기로 조금 내려가
면 삼성건물앞에서 41번타면 가장 빨리 간다고 자세히도 가르쳐준다. 여자
친구앞에서 으쓱했겠지? 거기서도 한참을 달려 광안리에 도착했다. 바다를
보았다. 파도를 보았다. 모래사장을 보았다. 모래사장엔 몽실몽실 모여앉아
술을 먹는 사람들 이 더운날 꼭 껴안고 있는 연인들 투성이었다. 우린 돗자
리를 펴고 베낭을 베게 삼아 누웠다. 바다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그냥 그대
로 자고만 싶었다. 하지만. 값이 싼 여관을 찾아 헤멘끝에 전화도 없는 에
어콘두 없는 둘이 누우면 꽉차는 방하나를 이만원을 내고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남았던 양주를 마시고나니 피로가 마구 몰려온다. 두시가 넘은 시간이
다. 잠들었다. 이상한 느낌에 일어나 안경을 쓰고 시계를 보니 헉 열시반이
다. 열시정도에 기차탄다고 했는데. 부랴부랴 씻고 다시 한번 광안리 바다
를 쳐다보고 부산역으로 달렸다. 이런. 좌석이 매진이다. 참. 하기 휴가 기
간중엔 요금이 십프로 할증이란다. 열받아서. 할수없이 입석을 끊었다. 나
야 시간반만 가면 되었으니. 동료도 대전까지 그냥 입석으로 간단다. 익산
까지 가야했으니. 삐를 치고 기차에 올랐다. 저앞에 주황색티에 남색 반바
지 조금은 통통한 모습에 초록색 가방을 메고 커트머리를 한 여인이 아기를
안고있는 모습이 눈낄을 끈다. 이번 정차역은 경산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경산? 그 여인이 천천히 열차를 내려 고가다리위로 사라진다. 혹시? 후문에
알아보니 역시나 아니란다. 열차칸 맨 끝에 쭈구리고 앉아있는 동료에게 인
사를 하고 다음역에서 내렸다. 역시 익숙한 기차역. 출구로 나가니 저앞 흰
원피스를 나풀나풀거리며 다가오는 이가 있으니 여왕님이 친히 나오셨다.
반가왔지만 포응은 못했다. 역을 나서니 나타쓰리 우마차가 대기하고 있었
다. 호. 눈에 익은 시내를 달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연락이 안와
동료 손전화기로 전화했단다. 그 동료는 어제밤 집에 갔는데. 열한시쯤 출
발했을거라고 해서 밥도 안먹고 기다렸단다. 먹을걸 사가지고 수성못에 갔
다. 시내 한복판에 이런곳이 있다니. 인공호수란다. 오리랑 용가리도 떠다
닌다. 까페에 들어갔다. 주문 받으러온 웨이터에게 태연스럽게 '이거 먹고
시킬께요'하는 여왕님. 여왕님은 여왕님인가 보다. 먹을걸 다 먹고 커피와
녹차를 시켰다. 헤즐럿이란다. 험. 까페를 나서며 벽에 걸린 사진판넬 하나
를 여왕님이 가리키신다. 함박눈이 내리는 까페 앞을 눈을 맞으며 지나가는
행인의 사진. 그 까페가 이 까페란다. 헉. 여기두 이렇게 눈올때가 있었다
니. 우마차는 그대로 두고 수성못을 따라 거닐다 소라 여왕님이 뭐라고 했
더라 하여튼 그걸 이쑤시게로 빙글빙글 돌려 빼먹으며 걸었다. 알멩이를 빼
먹은 껍데기를 여왕님은 거름된다고 여기저기 뿌리신다. 역시 여왕님이라
아무도 뭐라 안한다. 수성랜드에 들어섰다. 평일이라선지 사람은 별로 없
다. 파도타기, 바이킹, 회전목마 등등. 여왕님이 재믿는거 타러 가잔다. 흠
나 무서워서 못타는데. 우주선 같다. 빙글빙글 돌며 사정없이 위아래로 움
직이는. 올라탔다. 이십대 이상은 우리뿐이다. 출발한다. 점점 속도가 빨라
지며 여왕님의 힢은 나의 엉덩이를 압박해온다. 더더욱 압박하려고 손에 힘
을 주는듯하다. 아래위로 움직이며 여왕님의 흰원피스 자락이 나풀나풀거린
다. 아름답다. 우주선에서 하선을 하고 지나다 스티커 사진기에 눈이 갔다.
하트모양으로 사진을 박았다. 단추를 잘못눌러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
다. 여덟장씩 잘라 추억으로 간직했다. 지금 어디에 부칠까 고민중이다. 우
주선을 타고 갑자기 공간이동을 해선지 잠깐 자리에 앉아 파도타기 구경을
했다. 저런걸 어떻게 타지? 다시 우마차에 몸을 싫고 밥을 먹기위해 팔공산
갓바위로 향했다. 역시 감회가 새로운 길. 길을 한번 잘못들은 끝에 그곳에
도착했다. 여왕님의 단골식당에서 엑스칼리번가 에베레스튼가 호박엿을 먹
고 김치찌게를 먹었다. 밑반찬 하나가 전과는 바뀌었단다. 산이라선지 나시
흰원피스를 입은 여왕님이 춥단다. 우마차에 다시 올라 시내로 들어섰다.
좌회전 들어가려보니 공항이다. 원터치파윈! 우마차를 모는 실력은 대단했
다. 오년이라니. 폼은 근데 택시 기사란다. 역에 도착해 보니 시간반후에나
차가 있다. 할수없이 새마을운동에 동참하기로 하고 표를 끊으려니 좌석은
특석만. 새마을 특석 십프로 할증. 시간이 남아 역밖으로 잠시 나와 호박엿
을 한번더 맛보았다. 잠시후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여왕님의 나풀거
리는 흰나시원피스를 뒤로 한체 기차에 올랐다. 역시 작별 포응은 못했다.
투자한만큼 자리는 편했다. 이쁜 아가씨도 옆으로 왔다갔다하고. 열두시가
다되어 수원에 도착했다. 마지막 무거운 베낭을 메고 집까지 걸어갔다. 이
렇게 해서 나의 지리산을 시작으로한 휴가여행은 끝이나고 지금 남은것은
얼굴에 핀 열꽃과 오른쪽무릅의 통증, 여왕님과 찍은 스티커 사진, 그리고
빈지갑이 남았다. 하지만 나의 머리속 저 깊이 이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추
억으로 다시 꺼내어 펼쳐볼때까지 영원히 남아있을것이다. 아무쪼록 두 동
료와 여왕님께 같이 해준것에 무한한 감사의 말만 남긴다.

---- 지리산에 영원히 남겨진 이들을 생각하며... 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