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2. 18:41

<상절지백 스믈세에엣 - Ver.2007>

<음모가들의 시대>
인간 사회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조직 체계는 다음과 같다. 복잡한 위계
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관리자들>, 즉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제한된
권리를 지닌 <창조자들> 집단을 지도하거나 관리하고, <중개자들>이 분배를
구실로 창조자들의 노동 산물을 가로챈다...... 개미 세계에 일개미, 병정
개미, 생식개미의 세 계급이 있듯이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는 관리자, 창조
자, 중개자 라는 세 계층이 있는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두 지도자였던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의 권력 투쟁은,
한 사회가 창조자들이 우대받는 체제에서 관리자들이 특권을 누리는 체제로
이행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수학자이자 <붉은 군대>의 창설자
인 트로츠키가 음모가인 스탈린에게 밀려남으로써 창조자의 시대에서 관리
자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사회 계층 구조에서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 사람들을 유혹할 줄 알고 살인자들을 모을 줄 알며 정보를 왜곡할 줄 아
는 사람들이다.

---- 에드몽 웰즈.
안녕하세요....여러분....
저의 상절지백이 끝이 났다 생각하는 분들의 정신을 바꾸어놓기위해 다시
올립니다. 여러분들은 개미 세계의 세 계층이 서로를 지배하기 위해 그렇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종족을 번
식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런 세 계층으로 분류하여 각자 맡은 책음을 다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 생식개미들은 직접적인 종족
유지를 위해 생식을 할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이땅에 태어나지요. 알로 태
어나서 애벌레의 시절을 지나 날개가 달린 개미로 성장을 하지요. 한번의
비행을 위한 날개를 달고. 그리하여 성숙한 생식개미는 그들이 자란 집을
떠나 짝을 만나 새로운 곳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건설하고 자신의 고향과
다시 연합을 하지요. 이런 생식개미들을 위해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일개미
들입니다. 여왕개미의 수발부터 시작해서 알들의 보호, 집안단장, 농사, 식
량조달 등의 책임을 지고 그들이 죽을때까지 일만하지요. 그런 이들에게도
각자 분업화되어 일을 합니다. 어떤이는 버섯을 키우고, 어떤이는 진딧물을
사육하고 어떤이는(꿀단지개미) 죽을때까지 천장에 매달려 지내지요. 그들
은 종족의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일만을 합니다. 이런 모든 이들의 질서 및
방위를 위해 병정개미계층이 존재하지요. 이들은 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
고 또한 적으로 부터의 공격에 대비하여 훈련을 하며 실전에서 자신들의 몸
을 아끼지 않고 적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종족을 유
지하기 위해 발전해 가기위해 존재하는것이지 지배하기 위해 존재하는것은
아니지요..히히... 어려운 나도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지만 제가 아는 한 한
번 써봤습니다.
오늘은 저의 휴가때 지리산 산행일지를 소개하려합니다. 조금 길어지겠지만
그래두 읽을사람(요성)들은 다 읽는다구요...그럼.

--------------- 지리산 산행기 (재미는 없어요...)----------------------

-- 지금 시각 11:27.(8월 5일 야밤)
기차는 0:07 차다. 좌석이 있을줄 알았는데 없다. 왜 오늘 떠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아직 시간이 남아 역광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가만
히 오늘일을 생각해본다. 다른 날보다 일찍 눈을 떴다. 11:30. 3시에 잤던
가 했는데 그리 일찍 일어나다니 정말 희안한 일이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찾았다. 다행히 엄니께서 밥을 냉겨주셨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밥을 먹고
나른해진 나는 TV에 정신을 팔았다. 재미두 없두만. 올림픽에 관한 것만 하
구. 과연 오늘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떠나긴 떠나야 하는데 어디로
무얼 가지고 가는가. 배낭과 텐트는 어제 누나네서 가져 왔지만 텐트만 치
고 지낼순 없고. 우선 옷을 주섬주섬 입고 3시경 집을 나섰다. 수표로 받은
휴가비를 우선 통장에 넣고 카드로 현금을 찾으려 했더니.. 이~~~런. 수표
처리가 아직 안된 나부다. 다행히 그전 잔액이 있었기에 그걸 찾았다. 이제
우선은 불이 필요했다. 그래 작은 가스버너를 하나 사고 다음은 이~런 입고
갈 옷도 마땅치 않군. 반바지 2개. 글고 전부터 맘묵었던 맥가이버 칼을 샀
다. 그리고 서점으로 가 나의 이정표를 보여줄 지도를 하나 샀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하지만 허전한 기분. 물 끓일데가 없군. 작은 누나
네 전화. 이~~런. 전화를 안받네.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하는수 없이 다시
집을 나섰다. 이러다 휴가 가기도 전에 휴가비 다 쓰것네. 아주 작은 코펠
구입.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젤 중요한 민생고 해결을 위해 수퍼를
찾았다. 통조림, 호박하나, 커피, 음 뭘 사야하진? 아 자두맛 사탕, 자유시
간 5개. 마땅히 살게 없다. 참 건전지 젤 중요한거. 그리고 세면도구 한개.
집에 와 풀어 헤쳐놓았다. 그런데 왜 막막해지는 것일까. 시간이 다 되어가
는군. 그럼 좀 있다가....

-- 0:07분발 진주행 기차안.
아! 이자리를 차지한 것도 다행이군. 이자리 앉아본 사람은 알겨. 전엔 정
말 기차 탓다하면 이자리 차지하려고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자리가 입석 중
에는 특석이라구. 통일호 좌석 맨 끝 등받이 뒤의 공간. 승진이는 좀 힘들
겠지만 똥준이나 나같은 사람에게는 맞춤자리지. 지금 이곳에 편히 등 기대
고 앉아 극적여본다.
(위의 수퍼다녀온후의 회상) 왜 막막해질까? 겁도없이 단 혼자 떠난다고 장
담을 했다. 근데 갈수록 점점더 겁이 나는거야. 이 많은 짐을 어케 혼자 메
고 가며 거기다 산에 혼자 올라간다니...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이.. 하
지만 난 오기에 살고 오기에 죽는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선 젤 큰 문
제는 텐트였다. 이걸 들고 갈수는 없고 배낭에 넣자니 다른거 넣을 공간이
없고 하는수 없이 뽈대는 빼놓고 텐트만 먼저 넣었다. 음 공간이 많이 남는
군. 이제 나머지 짐을 마구 쑤셔 넣었다. 배낭이 꽉 차는군. 뽈대는 옆에다
묵었다. 제법 괜찮군. 한번 어깨에 메어 보았다. 이~~~런. 이거 완전히 노
가다판에서 벽돌 지어 나르는 거군. 옛생각이 불현듯 났다. 갓 대학이라는
곳에 처음 첫발을 들여 놓았던 신입생 시절 첫 여름방학 써클에서 간다는
MT가 최소가 되고 우리 동기생 셋은 이왕 가기로 했건거 각자 배낭을 싸가
지고 무작정 가기로 했지. 그때까지 난 산이라곤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간
설악산 흔들바위가 고작이었지. 그런데 지리산이라니. 그 크기로 유명한 지
리산. 하지만 파릇파릇한 88 꿈나무 시절 우린 무서운게 없었지. 그때 배낭
을 왜 그렇게 무겁게 쌓었는지. 그걸 어케들고 갔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떠
나야할 시간이 다되어간다. 표사고 밥이라도 한끼 먹으려면 지금 나가야지.
시간은 9시. 그럼 마지막일지 모를 백수동을 찾으려는 순간 삐리리릭! 삐리
리릭! 누구야? 잉? 많이 본 번호군. 전화기를 들고 띠띠띠띠~~ "여보셔요?"
대구 바부팅이다. "니가 왠일이냐 삐를 다치구?" 뽀연이가 전화해서 생각나
서 삐쳤단다. 이~~런. 휴가를 제주도로 갔다왔다더군. 쌍쌍이... 사라져 버
린 희망의 제확인.... 이젠 못돌아와도 핑계거리가 생겼군. 힘이 솓았다.
바부팅이는 요새 정신이 없단다. 오늘두 일거리 들고 집에 왔단다. 불쌍한
거. "너 시집 언제가냐?" "너 나한테 남자나 소개시켜주며 그소리해라."
"나 있잖아?" "너 늙은 여자 놀리면 혼난다." "짜슥! 시간되면 대구 들를께
." 이제 정말 출발해야 한다. 우선 백수동에 들르고. 잠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를 길을 떠나며 인사. 짠~! 돗자리를 가지러 누나네 들렸다.
"너 어디가니?" "몰라." "혼자가니?" "응!" "여기 돗자리." "나 간다!" "전
화 자주해?" "산에서두 전화하남?"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갔다. 막차가 0:07
분. 좌석은 없고 입석. 이~~런. "언제 도착해요?" "4시간 걸려요." 이~~런.
그럼 새벽 4시에 도착이면 그때 도착해서 뭐한담? 잠깐 남은 시간 밥먹긴
그렇고 행버거와 콜라 한잔으로 저녁을 떼웠다.
에구~~. 방금 천안에 도착했군. '천안 삼거리 에~~~ 헤에헤~~'
이제 잠이라도 좀 자 두어야겠다. 그래야 아침에 또다시 힘을 쓰지. 에구~
라디오두 지역이 바뀐다구 '치~~~익, 칙!' 거리는군. 지금 시간이 0:55. 누
구 들와 있으려나? 자 그럼 백수동 화이뚱!

-- 지금 시각 3:05.
잠을 자려했지만 실패. 그저 눈을 감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왼쪽 엉덩이
아프면 오른쪽 엉덩이 대고 오른쪽 엉덩이 아프면 왼쪽 엉덩이 대고. 이것
도 오랜만에 하니 어렵군. 이제 나도 늙었나? 어디 이래가지고 천왕봉을 접
수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입에선 연실 하품이다. 잠자는 것은 포기했다. 구
례 도착해서 대합실에서 한숨 자야겠다. 거기서 잘수 있을지 모르지만. 참
가서 가스 사야된다. 꼬치장하고. 이거 잊어뿔면 말짱 꽝이다. 치매야 물러
가라~~~. 으그... 저 앞에 두 커플은 왜이리 나의 마음을 흔드는겨? 둘씩
꼭 끌어안고.... 어디 혼자 다니는 사람 10받아서 살것나? 에이 완존히 오
늘 초치는군. 좀전에 익산을 지났다는데 언제쯤 도착하려나? 으구~~ 배두
고프군. 햄버거 하나로 떼웠으니. 비상 식량을 하나 써야겠군. 얌~~얌~~!
그래서 이런 여행에선 이런 비상식량이 꼭 있어야 혀. 내가 자두맛 사탕은
왜 가지고 가는지 아는사람? 없어? 그건 다 이유가 있지. 산행을 할땐 꼭
필요한 거지. 산행중 무거운 배낭을 매고 오르다보면 땀도 많이 흘리고 목
도 마르지. 이럴때 사탕을 하나 입에 물고 살살 녹여 가며 오르는거야. 그
럼 목도 덜 타고 사탕이므로 열량도 섭취를 하게되지. 이걸 보고 일석이조
라 하는거지. 캬~! 문자군. 이거 내가 점점 유식해 지는거 같애. 이러다 제
2의 슈바이쳐가 나오는건 아닌지 몰러. 지금은 여치의 1집을 듣고 있다. '
별이진다네' 영준이가 좋아하는 노래랬나? 여치 1집은 많은 효과음들이 들
어가있지. 동물소리부터 곤충소리, 파도소리 등등. 오랜만에 들으니 새롭군
. 방금 전주 도착이다. 에구.. 졸려 죽것는디 빨리좀 가징.

-- 지금 시각 8:30.
노고단산장이다. 벌써 노고단산장이냐고? 택시기사의 꼬임에 빠져 성삼재까
지 차타고 올라왔다. 원래 계획하고는 엄청난 차질을 빚었다. 이곳엔 점심
때 쁨에나 도착 예정 이었는데 7시에 올라왔으니... 참 그 택시 죽이데. 완
존히 자동차 경주였다. 시속 100킬로가 넘는 속도로 달려 커브길도 속도를
안줄이고 휙~~. 몸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그런데 노고단까지 올라가는줄
알았더니 노고단까지 3km 남았음까지 밖에 안가는거 있지. 속았다 생각했지
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침도 못먹은채 오르는 3km 길은 그야말로 지옥이었
다. 땅만보고 걸었다. 어느새 왁자지걸. 노고단 산장이다. 네번째 찾아오는
노고단 산장. 변한것은 별로 없다. 화장실이 하나 더 생기고 산장 숙소 같
은 것이 하나더 생겼다. 참 이곳 산장지기도 하이텔을 한다는것을 아니? 전
에 한번 있었던 '산정동(산악정보동호회)'이라는 곳에 매일 지리산의 기후
나 소개를 하는 분이었다. 산이 좋아 들었던 산정동인데 지금은 사라져버려
무척 아쉽다. 나는 뭐 활동한 것은 없었지만 없어지는 것은 정말 시로. 지
금은 다시 작은모임에 개설을 했다하는데 아직 찾아보지는 못했다. 으그..
요번은 왜이렇게 날이 말짱한지 모르겠다. 천왕봉에 도착할때 이래야 되는
데... 지금 내 앞엔 얼라들이 자연보호 나왔나부당. 인솔자가 지금 조회하
고 있는데 그 옆에 뭐라두 되는 것처럼 쭈그리고 앉아 이글을 쓰고 있다.
히히. 학교별로 나왔나부다. 뭐 상품도 준다네. 어디 남는거 하나없나? 나
두 좀 주지. 음냐리... 지금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간다네. 지금 내 앞에 잠
자리 한마리가 와서 앉았다. 재 그림자에... 잠자리도 더운가부당. 그늘을
찾는거 보니. 참 아까 차를 타고 올라오며 멋있는 광경을 보았다. 맥주의
거품이 넘쳐 흐르듯 구름이 산의 능선을 타고 넘어 흐르는 것이다. 산에 오
른자만이 볼수 있는 특혜지. 차를 타고 본 것이 깨름찍하지만 이해해 주구
려. 이몸이 늙었으니... 슬슬 나도 출발을 해야겠다. 잠도 못 잤는데 오늘
은 '연하청 산장' 목표로 가련다.

이상 저의 지리산 산행 일지의 모든것이랍니다...히히. 왜냐? 여기 까지 밖
에 안썼으니까요...쿠쿠. 사실 노고단 출발하고 부터의 일지는 정말 생각했
던것과는 너무도 다르게 진행되었기에 일지를 쓸만한 여력이 되지를 못했답
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나의 뛰어난 두뇌의 기억력을 토대로 간단하게 실
제의 산행일지를 작성하려 합니다. 간단하게....

구례역에서 택시 기사의 섭외를 받았을때 잠시 생각을 했다. 계획은 구례역
에 도착하여 해장국 한 그릇으로 아침을 먹고 화엄사를 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 노고단 산장으로 였습니다. 첫솔로 산행으로 걱정도 되었고 체력의 문
제도 있어서 컨디션 조절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하지만 택시기사의 꼬임에
일정을 반나절 앞당겨 시작할수 있다는 잇점에 꼬치장과 가스를 사가지고
택시에 오르게 되었지요. 하지만 택시는 노고단이 아닌 성삼재라는 곳에 섰
지요. 여기서 노고단은 3km. 잠도 못자고 아침도 안 먹은 상태에서 3km는
정말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내리막도 없는 그저 위로 오르는 길밖에 없었지
요. 거의 한시간은 걸렷을걸로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오르는 길에 본 다람
쥐들은 내가 산에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에 용기를 갖게 해주었지요. 드뎌
도착한 노고단 산장은 역시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우선 치~~익! 뽀~~~~옥!
퓨~~~~~~~~~~~~`우! 담배를 한데 피워 물었지요. 잠시 예전에 찾았던 산장
의 추억을 생각해보았지요. 우선은 아침을 해결해야했습니다. 텐트들 사이
의 빈자리를 찾아 자리를 피고 배낭을 풀었지요. 아침메뉴는 참치호박꼬치
장찌게였지요. 시장이 반찬이라고 무지 맛있더라구요. 아침을 간단히 해치
우고 8시 반에 산장을 출발했지요. 노고단에 올라 잠시 경치 감상을 했지요
. 노고단은 운해로 유명하지요. 하지만 이날은 그리 멋있지는 않았답니다.
운해는 그래두 비가 약간 보슬보슬 내리고 그 비로 공기가 맑아진 상태에서
보아야 그 하얀 운해의 진정한 멋을 찾을수가 있지요. 하지만 이날은 공기
가 약간 뿌옇고(비가 안왔음.) 운해도 좀 흩으러진 상태였지요. 잠깐의 경
치구경과 휴식후 노고단을 출발했지요. 목표는 '연하천산장'. 지도상으로는
여섯시간 반정도의 거리였지요. 이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을 했지요. 뭐든
지 그렇지만 지리산의 산행은 좀 인내력을 요하지요. 산행을 하며 볼거리도
별로 없고 그저 걷기만을 하는거지요. 그렇게 걷다보면 서로 뒷서거니 앞서
거니 하며 같은 사람을 계속 보게 되지요.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곤
하지요. 그런 사람이 한사람있었습니다. 배낭을 보니 산행에는 베트랑인듯
싶더군요. 비록 샌달을 신고 있었지만. 나이는 저보다 많은거 같았고 손에
는 무선통신기를 가지고 있었지요. 임걸령이라는 곳에 가기전에 몇마디 나
누다 보니 동행을 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노고단에서 어디 교회에서 온
팀들이 있기에 거기 인솔자인줄 알았지요. 헌데 알고 보니 일행은 남자둘
여자 하나 였지요. 그 형님(이하 형님으로 칭함.)은 일행을 데리고 연하천
산장을 지나 선비샘까지 목표로 잡고 있었지요.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연하
천까지만 가자고 설득하고 있었지요. 저또한 거기에 동참했지요..히히. 우
린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산행을 했지요. 이렇게 하여 우린 점심때
뱀사골 산장에 도착했답니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었지요. 하지
만 뱀사골 산장은 이곳에서 100m쯤 내려가야했지요. 물은 그곳에만 있었답
니다. 동상(또 한 남자. 나이가 나보다 어려 이하 동상이라 칭함.)이 물을
뜨러갔지요. 우린 자리를 잡고 라면 끓일준비를 하여놓고 있었지요. 생각보
다 늦게 도착한 물로 라면을 먹으며 약간의 얘기를 나누었지요. 이들은 천
리안에서 게시판에 산행 동행자로 연락이되어 그날 노고단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 했답니다. 참나 처음엔 황당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우리들은 오
늘 모두 처음 만난 사이들이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난 더더욱 거리감없이
이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지요. 뱀사골을 출발하여 연하천을 향해 돌진을 했
지요. 하지만 처음으로 만난 토끼봉은 만만치가 않았지요. 이러다간 연하천
에서 캠프사이트(텐트 칠곳. 요번 산행에서 배움..키키)도 못찾을것 같았지
요. 그래서 베트랑인 형님이 먼저 연하천으로 가서 캠프사이트를 잡아 놓기
로하고 형님과는 헤어졌답니다. 남은 동상과 요자(유일한 요자 동행자. 이
하 요자로 칭함.)는 남은 길을 힘들여 갔지요. 요자는 산행을 많이 해본거
같더군요. 저도 따라가기가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동상은 힘을 못쓰더군요.
하는수 없이 난 동상 뒤를 따라가며 챙겨야했습니다. 지 성격이 남이 뒤로
쳐지는 것을 보고 혼자 갈수는 없는 성격이니까요. 우린 어렵게 연하천에
도착을 했지요. 형님은 역시 좋은 캠프사이트를 잡아놓았답니다. 우선 우리
는 텐트를 치고 포도청을 접수했지요. 그리고 가장 컸던 내 텐트에 모여 앉
아 맥주를 한잔씩하며 얘기꽃을 피웠지요. 우선 자신들 소개를 하고(이때서
야 서로들 이름을 알게된거 있죠?...키키키) 산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 세
상사는 얘기들을 나누었지요. 그리고 낼을 위한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긴바
지하나 안가지고 간 나로선 술기운에 '이정도면 충분히 자겠구먼...'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지요. 힘든 산행에 곧바로 잠이 들수 있었답니다. 텐
트는 모두 세개였으므로 동상과 함께 제 텐트에서 잤지요. 그런데 새벽에
잠이 깨었습니다. 넘두 추운거 있죠. 가져갔던 자켓하나로 몸을 덮으려고
잔뜩 움크리고 자려했지요. 하지면 거의 잘수가 없었답니다. 다음날 아침
전 젤 늦게 일어나야만 했지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동상이 자기 침낭을 덮
어 주었더군요. 우리는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발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천왕봉 바로 밑인 장터목 산장이었지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산행일정이었지요. 날씨는 계속 맑았으니 가능한 일이었지요. 이상하게 이
번 산행은 비가 안오더라구요. 4번째 지리산행인데 3번은 다 비를 쫄딱 맞
았었는데 이번 산행은 신이 함께 하는구나 생각을 했지요. 드디어 출발을
하여 우린 선비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오늘의 첫난관인 형제봉을 향했
지요. 역시 동상은 점점 처지고 나도 따라 처지고 일행은 먼저 앞으로 나아
갔지요. 형제봉을 간신히 넘어 벽소령에 도착햇지요. 여긴 이번에 산장을
짓고 있었답니다. 저기 세석 산장도 산장숙소를 늘였고 지금은 야영을 금지
한다고 하더군요. 이제 앞으로는 산에서 야영하는 것이 점점 없어진다는 말
에 아쉬웠습니다. 선비샘에서 만나기로 하고 또다시 출발을 했지요. 동상은
점점더 힘들어 하고 자긴 세석까지만 간다고 자꾸 힘떨어지는 말을 했습니
다. 그런 동상을 데리고 힘겹게 선비샘에 도착을 했지요. 선비샘에서 누룽
지를 끓여 점심을 먹고 다시 마지막 목표인 장터목 산장을 향해 출발을했습
니다. 형님과 요자와는 장터목에 캠프사이트를 먼저 잡겠다고하여 거기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지요. 동상과 나는 정말 힘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답니다. 동상은 거의 다리가 풀려있었고 그런 동상을 데리고 가는 나
의 다리도 거의 풀려가고 있었답니다. 정말 거의 기다시피하여 세석에 도착
을 했지요. 멀리 저기에 형님이 눈에 띄었답니다. 저흴 기다리신것 같더군
요. 저흴 보고 형님은 먼저 출발을 하고 동상은 여기서 더이상 못가겠다고
세석산장으로 내려가려했습니다. 전 할수 없이 동상을 따라 산장까지 내려
갔지요. 설득해서 데려갈 생각이었지요. 잠시 휴식하고 물병두 채우고 하려
고. 하지만 동상은 도저히 못가겠다고 주저앉고 나 먼저 가라고 하더군요.
말이됩니까? 야영도 못하고 산장은 꽉찾을텐데 어떻게 여길 두고 나혼자 가
겠어요? 결국 거의 한시간만에 설득을 하여 뻔하게 보이는 거대한 촛대봉을
향하여 발길을 옮기는 순간 동상은 그자리에 다시 주저앉아버렸습니다. 이
젠 몸이 말을 도저히 안듣는 상태였지요. 전 막막했습니다. 시간은 점점 가
고 몇시간 후면 어둠이 찾아올텐데 여기는 야영을 할수도 없고... 결국 전
결심을 해야만했지요. 동상에게 절대 어두울때 움직일 생각을 말라고 다짐
에 다짐을 하고 동상을 혼자두고 난 촛대봉을 향해 혼자 출발을 했답니다.
그것이 동상과의 마지막이었지요. 아직 그 동상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무사히 돌아왔겠죠. 혼자 걷는 장터목산장까지의 산행은 정말 외롭고 하지
만 긴장감이 넘치는 시간이었답니다. 촛대봉만 넘으면 장터목까지는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었답니다. 하지만 먼저간 일행을 찾기위해선 어둠이 오기
전에 장터목에 도착해야했지요. 그래서 난 거의 쉬지도 않고 강행을 했답니
다. 동상이 없는 혼자의 산행은 전보단 좀더 빨라졌지요. 결국 어둠이 오기
전 전 장터목에 도착을 했답니다. 사람들이 무지 많더군요. 이곳에서 어케
일행을 찾지 하고 있는데 저 앞에 요자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이더군요
.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필사적으로 요자를 따라 눈을 띠지않고 찾아갔지
요. 그곳에는 형님과 또다른 일행이 하나 더 있었답니다. 멋진 캠프사이트
를 찾아놓고 있었지요. 동상이 세석에서 낙오했다는 말에 일행은 슬픔을 금
치못했답니다. 정말 아쉬워들하더군요. 하지만 또다른 솔로의 합류로 빈자
리를 채웠지요. 작은형님(이름도 모르지만 나보단 나이가 위인듯하여 이하
작은형님으로 칭함.)도 산에 베트랑인듯 싶더군요. 텐트를 치고 저녁준비를
했지요. 헌데 이곳은 물과의 전쟁이었지요. 씻을 물은 커녕 식수도 한시간
이상 줄을 서야 겨우 구할수가 있었지요.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우린 모야
앉아 또다시 이야기 꽃을 피웠지요. 한잔하며... 정치얘기부터 시작하여 모
든 세상사는 얘기까지 다 나왔지요. 마지막으로 내일의 하산일정을 잡는것
이었습니다. 난 원래 하산 일정을 잡지 않았었고 큰형님은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어려운 코스를 잡고 있었지요. 작은 형님은 백무동계곡 코스를 잡
았었구요. 결국 요자의 입김과 저의 지원에 백무동계곡으로 낙찰이 되었지
요. 낼은 우선 5시 기상, 짐을 둔채 맨몸으로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보고
다시 돌아와 아침을 먹고 백무동으로 하산하여 남원에서 차를 타는 일정이
었지요. 그리고 우린 다시 지리산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냈답니다. 그날저녁
은 정말 별들이 내 눈에 다 쏟아져 들어올것 같은 맑은 밤이었지요. 큰형님
의 텐트는 요자가 자고 내 텐트에서 형님과 같이 잠자리에 들었지요. 전 내
자켓과 형님의 자켓을 빌려 덥고 잤지요. 그런데 자다 보니 무슨 소리에 잠
이 깨었습니다. 시간은 새벽2시. 밖에서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옆텐트 사람들이 그시간에 일출본다구 짐을 챙기며 떠드는 소리였지요. 형
님은 잠을못자(내 코고는 소리에도...) 신경질 적으로 밖에다 소리를 질렀
습니다....후후. 조용해 지더군요. 5시에 우리는 기상하여 어두운 길을 후
레쉬를 들고 오르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이네 날은 밝아오고 있었답니다.
아직 저 앞에 보이는 천왕봉엔 못갔는데 벌서 날이 밝아오니 약간 두려워지
더군요. 일출을 못볼것 같다는 생각에... 결국 도착한 천왕봉에는 이미 태
양은 지평선을 떠올라 구름띠 사이로 들어가고 있었지요... 이렇게 아쉬울
수가. 형님은 자기 페이스에 맞추어 시간을 잡았던거지요. 하지만 요자와
난 그렇게 빨리 그곳에 갈수가 없었지요.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천왕봉에
서 바라보는 광경은 멋있었습니다. 지리산의 모든 봉우리들을 한눈에 볼수
있었지요. 저멀리 구름위로 떠있는 덕유산의 정상도 보았답니다. 지금 저
덕유산 정상에서도 여기 지리산 청왕봉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을것이라고 형
님이 그러더군요. 야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린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와
아침을 지어먹었지요. 그리고 9시 우린 짐을 다시 배낭에 꾸역꾸역 넣어 하
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백무동계곡 코스는 저로서는 처음이었답니다. 그래
도 계곡이라 물이 있기에 가다가 세수도 하고 발도 담그고 하며 내려오기도
했지요. 그런데 두시간쯤 내려왔을까 전 뒤쳐지기 시작했답니다. 무릅이 완
존히 맛이 간것이지요. 동상처럼 말입니다. 주저 앉을수는 없고 점점 뒤처
지기 시작했지요. 전 앞으로 먼저간 일행을 찾아 등산로표시인 리본 만을
찾아 내려가기 시작했지요. 중간에 큰형님이 기다리시더군요. 먼저가라고..
그런데 내려가다 보니 일행이 눈에 띠지가 않았답니다. 이정도면 쉬고 있을
텐데 보이지를 않았답니다. 백무동 계곡은 물 있는 곳과 등산로가 조금 떨
어져 있답니다. 전 무조건 리본만을 찾아 내려갔고 일행은 계곡을 따라 내
려간 것이지요. 전 하는 수 없이 리본을 의지하여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습
니다. 다리는 맛이 간 상태에서 정말로 힘든 하산 길이었지요. 거의 두시간
은 쉬지도 않고 내려왔지요. 혹시 일행을 만날수 있지 않을까하고. 하지만
찾을수 없었답니다. 또한 백무동 계곡의 하산 길은 너무 도 지루하고 힘든
코스였습니다. 나에게는... 길도 평탄치않고 가도가도 끝이 안보였습니다.
이정표는 분명 4km 남았다고 했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겨우 1km 갔다는 이정
표가 보일뿐이었습니다. 난 한 3km는 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안일이지
만 여기 이정표의 거리 표시가 잘못되있는거 같다고 하더군요. 이 백무동의
두시간의 하산 코스는 정말 나와의 전쟁이었지요. 의지할때없는 나와의 싸
움. 하산할수록 기온은 점점더 올라가고 태양은 뜨거워만 갔지요. 온몸은
금새 터질거 같은 보일러처럼 타올랐지요. 백무동의 차타는 곳에 도착했을
때 한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행은 거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지요. 전 콜라로 목을 축이며 앉아있었지요. 한 20
분인가 후에 일행이 도착하더군요. 전 등산로로 내려왔고 일행은 계곡을 따
라 내려왔던 것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다시 일행을 만나게 되니 기쁘기만
했습니다. 우린 버스를 타고 남원으로 나갔지요. 이제 이곳에서 헤어지는
일밖에 없지요. 우린 남원에서 마지막 쫑파티를 했지요. 동상이 이곳까지
같이 왔다면 좋았을텐데 아쉽지만 우린 갈비집에서 점심을 마지막으로 같이
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지요. 이렇게 하여 저의 지리산 산행기는 끝을
맺습니다. 아마 저혼자 였다면 이렇게 빨리 지리산 종주를 하지는 못했을겁
니다. 끝까지 혼자였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요. 새로
운 사람들을 알게 되고 얼마나 좋습니까....

장장 네시간에 걸친 이번 글을 쓰며 불끈불끈 떠오르는 그때의 추억에 흥분
을 해보았습니다. 좀 지루했죠? 아마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을걸로
압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은 요성이에게 감사하며 이글을 마칩니다.
그러 여러분...악~~~~~~~~~~~~~~~~~~~~~~~~~~~~~~~~~~~~~~~~~~몽!

---- 지리산 다녀온 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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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10 19:01
남는 커피 한잔! 밥 한숟갈! 상추쌈 한덩이! 소주잔에 담긴 양주반잔!
둥굴레차 한팩! A/S! 금요병! 냉수! 정말로 엄청난 기록이군. 아마도 이번
상절지백이 전에 내가 썼던 상절지백중 제일 첫번째로 꼽던 글이게다. 그땐
정말 어떻게 저렇게 썼었을까?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맞았던 여름휴가때
무모하기 짝이없이 솔로로 지리산종주를 꿈꾸며 아무준비와 대책도 없이
그냥 떠났었던 산행. 그전 나의 산행 경험은 같은 지리산을 처음과 두번째는
화엄사에서 노고단 뱀사골계곡으로 하산하는 1/4쪽짜리 산행경험과 물론
학교 동기들과 학교 선배들과 했던 것과 세번째로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갔었던 그래도 그땐 종주를 했었지. 이렇게 세번밖에는 없었다. 근데 솔로로
아무 대책도 없이 떤난 산행. 참으로 지금생각하면 무모하고 겁도 없었던것
같다. 지금 아마 그렇게 가라고 하면 못갈것이다. 나이가 이제 들었으니 후후~
그때의 큰형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얄쌍하고 키가 높은 베낭에
츄리닝 바지와 맨발에 샌달. 그리고 손에 무전기. 그분 직업이 서울 강남이던가
에서 조그만 사무실을 가지고 계시다고 했었는데.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째꺼나 저째꺼나 그땐 정말 내생에 있어 아주 특별했던 경험이었
던것 같다. 아마도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리라. 조금은 늦었지만
천왕봉에서 본 일출의 장관과 덕유산 봉우리들의 모습. 천왕봉은 꼭대기가
바위돌로 커다랗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엔 시골집 앞마당처럼 조그만
흙으로 된 마당이 있다. 내 언젠간 저기서 텐트를 치고 자야지하고 당시 생각
했었다. 지리산! 안가본지 한참이 되었다. 집사람과의 연애를 시작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못갔던거 같다. 지금까지. 산에 오르면서 즐겼던 혼자만의 시간.
무거운 베낭은 어깨를 사정없이 짓누루고, 이마에선 하염없이 땀이 흘러 눈섭을
타고 안경 안쪽으로 떨어져 밑으로 흐른후 콧잔등을 타고 내려와 콧등에서
다이빙을 하여 걷고 있는 내 발 앞 흙길위에 떨어진다. 그 땀 한방울과 지구와의
엄청난 충돌을 목겨하며 아무생각없이 오르는 산행.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흥분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다시 언제 그 흥분을 느낄수 있을까. 흐흐. 당시 저만
큼의 불량을 하이텔 PC통신 게시판에 글을 올릴려면 엄청난 인내와 끈기가
있어야 했다. 올리는 것도 문제지만 그걸 읽는다는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었으니까. 당시 끝까지 읽어준 백수동민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 지리산이 그리운 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