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6. 01:16

<상절지백 백서른세에엣>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토피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쑤, 샤이엔, 아파치, 크로, 나바호, 코만

치 등 어느 부족을 막론하고 똑같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그들은 스스로를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그들 부족은 한 지역의 사냥감이 떨어졌

다 싶으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 사냥감이 다시 깃들일 때까

지 기다리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자연에서 먹을 것을

취하되, 자연을 고갈시키지 않았다.
그들의 가치 체계에서 개인주의는 자랑거리라기보다는 웃음거리

였다.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남우세스러운 일

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고 아무것에 대해서도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그

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 인디언이 자동차를 사면 누구든 그것을

빌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산 사람도 으레 누구에게든 빌려

주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디언의 자녀들은 강제나 속박 없이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자연스럽게 부족의 어엿한 일원으로 성장해 갔다.
인디언들은 접목 교잡법(交雜法)을 터득하여 옥수수 같은 작물

의 잡종을 만드는 데 이용하였고, 파라고무나무의 수액을 이용

해 방수포를 만들었으며, 유럽의 면직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결이 고운 무명옷을 지을 줄 알았고, 아스피린(살리실 산)이며

키니네 등의 효험을 익히 알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는 세습 권력도 항구적인 권력도 존재

하지 않았다. 어떤 결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각자 파우와우(부

족회의)에서 자기 의견을 개진하였다. 파우와우는 유럽의 공화

제 혁명보다 훨씬 앞서서 이루어진 의회 제도였다. 만일 부족

구성원의 다수가 추장을 신뢰하지 않으면, 추장은 스스로 자리

에서 물러나곤 했다.
북미 인디언 사회는 평등한 사회였다. 물론 추장은 있었지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따라야만 추장이 될 수 있었다. 지도

자가 되는 것은 신뢰의 문제였다. 또, 파우와우에서 어떤 결정

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었다.

자기가 그 결정에 찬성 투표를 했을 때에만 그것을 따를 의무가

있었다. 말하자면, 부족 회의는 남에게 자기 의견을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려는 행동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

한 장치였던 셈이다.
북미 인디언들은 한창 번영을 누리고 있던 시절에도 직업적인

군대를 보유한 적이 없었다. 필요할 경우에는 모두가 전투에 참

가 하였지만, 그들은 전사이기 전에 먼저 사냥꾼이자 경작자,

그리고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그들은 생명이란 그 형태가 어떠하든 마땅히 존중해야 하는 것

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적의 목숨도 함부로 해치지 않았

다. (남이 너에게 행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

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를 늘 견지했던 것이다. 그들

이 생각하는 전쟁은 자기의 용기를 보여 주는 하나의 경기였지,

적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전투는 막

대의 둥글린 끝을 적의 몸에 대는 것만으로 승부가 판가름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적을 죽이는 것보다 더 명예로운 일이었

다. 말하자면, 그들의 전투는 오늘날의 펜싱 경기와 비슷한 것

이었다. 어느 편에서든 피를 흘리는 사람이 생기면 전투는 즉각

중단되었고, 사망자가 생기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런 문화 속에 살던 그들의 유럽 인들의 전쟁 방식을 이해하기

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인과 부녀자와 아이까지 죽이

는 백인들을 보고 그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단

지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몰상식하고 비논리적이어서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북미 인디언들은 남미의 인디오들보다 비교적 오랫동안

백인들의 침략에 저항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남미 쪽이 공격하기가 더 용이하였다. 남

미 인디오 사회는 우두머리의 목만 자르면 사회 전체가 붕괴되

어 버렸다. 그것은 위계 질서가 엄격하고 행정이 중앙에 집중된

사회체제의 큰 약점이다. 그런 사회는 군주 하나에 사회 전체의

운명이 좌우되기 십상이다.
북미 인디언 사회는 남미 쪽보다는 더 분산된 구조를 지니고 있

었다. 백인 카우보이들은 이리저리 이동하는 수백의 부족을 상

대해야 했다. 그들의 목표는 한곳에 붙박혀 있는 왕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수백의 우두머리였다. 1백 50명으로 이루어

진 한 부족을 겨우 굴복시키거나 몰살시키고 나면, 다시 1백 50

명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부족을 공격해야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인디언들은 유럽 인들의 대학살을 필할

수 없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던 1492년 무렵

에 아메리카 인디언의 수는 천만이었다. 그로부터 4백년이 지난

1890년에 인디언 인구는 15만으로 줄었고, 그들 중의 다수는 유

럽 인들이 옮겨 온 병 때문에 죽어 가고 있었다.
1876년 6월 25일의 리틀 빅 혼 전투는 전례 없이 많은 인디언들

이 집결해서 싸운 드문 경우였다. 1만에서 1만 2천에 달하는 인

디언들이 함께 모였고 그 중에 전사는 3천에서 4천을 헤아렸다.

인디언들은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군대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

다. 그러나 좁은 땅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승리를 거든 후에 다시 흩어졌

다. 그들은 백인들이 그런 모욕을 당했으니 다시는 자기들을 깔

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디언 부족들은 백인들에게 차례차례 정복되었다. 1900

년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부는 그들을 몰살하려고 했다. 1900년

이 지나면서 미국 정부는 인디언들이 흑인이나 치카노(멕시코

계 미국인), 아일랜드 인, 이탈리아 인들처럼 미국이라는 <멜팅

포트>^19^에 통합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견의 소치였다. 인디언들은 자기들이 서양의

정치 사회 체제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의 체제가 백인들의 것보다 더 진보되었다

고 믿었다.

---- 에드몽 웰즈

^19^ 원래는 <도가니>라는 뜻, 잡다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을

말하며, 종종 미국을 지칭한다.

[2012.6.6 01:13] 사무실
집을 나서기전 잠시 망설인다. '잠바를 입고 갈까?' 하지만 그

냥 집을 나선다. 코를 통해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자동차의

매연이 혼합되어 야릇한 맛이 난다. 거리의 사람들 의상을 안보

는척 살펴보니 간혹 잠바들을 입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도 짧

은티가 대세다. 지하철역을 내려가며 시계를 본다. '뭐 적당한

시간이군!' 남들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고 열차표 사고할때 느긋

하게 들고 있던 폰으로 개찰구를 통과 한다.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를 누려야지 말야.' 폰에 nfc기능을 지원하는 폰이면 다 된

다. 열차를 타기 위해 1층더 내려간다. 내가 항상타는 4-4 출입

구로 간다. 이곳은 가리봉에서 환승시 내리자마자 바로 환승계

단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최단거리의 출입구다. 열차가 잠시후

도착하여 차에 오를 준비를 하며 얼마전 포인트로 장만한 블투

헤드셋을 꺼내든다. 모토롤라 제품으로 운동시 땀을 흘려도 괜

찮은 방수기능이 있다. 열차에 올라 빈자리에 앉으며 폰으로 블

투를 연결하고 mp3를 터치한다. 잠시후 이내 세상의 소음으로

부터 벋어난다. 음악을 들으며 두정거장을 간다. 벌써 가리봉이

다. 4-4 앞에서 내리자마자 달리기 선수가 '요이 땅!' 소리와

함께 트랙을 달려 나가듣이 달려 나간다. 1차 관문인 계단을 오

른다. 2차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3차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오

른다. 아직 열차가 도착하지 않았다. 다음 열차는 천안행. 여기

선 1-1 출입구에 선다. 이곳도 석수에서 내리자 마자 나갈수 있

는 최단거리의 출입구다. 잠시후 열차가 도착하고 열차에 오른

다. 자리는 없다. 세정거장만 가면 된다. 왼쪽 출입구 한번 오

른쪽 출입구 두번. 느긋한 마음으로 볼륨을 올리며 폰으로 오늘

의 뉴스를 잠시 검색한다. 워즈니악인가 애플에 누가 갤럭시노

트는 별로 매력이 없다 했나? 연예 쪽으로 간다. 태티서가 12개

의 트로피를 안고 활동 한달만에 6월 3일 인기가요 방송을 마지

막으로 마무리 한단다. 트윙클인가 별로 들어 보지도 않았는데.

그러는 사이 뭔가 쏴하는 느낌... 열차는 달리고 있다. 그런데

역에서 멈추질 않는다. 꿈인가? 열차내 다음 정차역은 안양으로

표시 되어 있다. '헉! 아닐꺼야.' 하지만 열차는 무심하게도 또

다시 역을 그냥 통과한다. 'ㅠ.ㅠ' 머리속에선 이미 멘탈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천안행 고속열차... 다시 집으로 돌아가 차를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인가. 시계를 보았다. 다행히 막차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열차가 안양역에 다가선다. 열차가 멈추고

빛의 속도로 달려나가 상행선 플랫홈으로 달려간다. 내릴때 최

단거리인 1-1 위치를 찾아간다. 열차가 이제 군포를 출발했단다

. 시간은 흐르고 열차에 오른 시간은 44분. 여기서 두정거장. '

잘하면 가능하겠어' 피말리는 시간이 흐르고 석수에 도착 전력

질주를 위해 베난끈을 양어깨에 다 둘러맨다. 문이 열리고 경주

마가 문이 열리며 뛰어 나가듣이 출발하여 조금 짧은 다리로 두

계단씩 뛰어 올라 다시 계단을 내리뛰어 가며 저멀리 버스가 서

있는 것을 바라본다. 짙은 하늘같은 파란버스가 한대 서있다. '

휴우~' 차에 올라 시계를 본다. 55분. 세이프다... 편안하게 자

리를 잡아 앉고 아침의 경주들을 잠시 회상한다. 그리고 폰을

터치하며 회사 다올때까지 이러고 있다...

며칠전 아침에 겪었던 멘탈붕괴 사건... 이곳에 남겨본다...

---- 멘탈붕괴 되었던 하얀개미